현산문화19호

향토단상 / 연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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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800회 작성일 2008-03-3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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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문화원 사무국장 최종한


붉게 타던 단풍이
수정빛 계곡물에 녹아들어
고향 찾는 연어의 혼인색을 만든다.

사람들은 추억으로 강을 찾고
연어들은 종족으로 강을 찾는다.

백오십 리 물길 따라
언제나 가슴을 뚫고 지나는
추억의 남대천.
사람들은 이 강에서
어제를 응시하고 오늘의 상념을 헹군다.

수억만 리 이국의 바다 헤치며
모천을 찾는 항해.
마지막 무대의 연출을 위해
수의를 준비하는 연어는
떠나는 계절의 망토를 온몸에 걸친다.

남대천을 휘돌아 흐르던 사연은
비 내리는 무성영화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추억의 색깔은 흑백이다.
빛바랜 추억의 가슴 속은 원색으로 채색되지 않아
별빛도 달빛도 닿지 않는
속 깊이 속 깊이 흐르는
흑색의 물길이다.

추억을 반추하는 사람아.
물길을 사랑하는 연어야.
깊은 강바닥에서
우리의 유골 건질 때
남은 것이란 단지 허접한 흔적에
불과한 것이니라.

아름다운 이야기
손가락 건 맹세도 이와 같은 것.
진실은 채색하지 않아서 허접한 듯
단지 흑백의 이야기처럼
건조한 것이어야 한다.

까맣게 까맣게 타버린 가슴.
그런 진솔한 그리움이어야 한다.

원색으로 추억하던 이 길을
이제 밤의 빛깔이 녹아내린
어둠의 장막이 쳐질 것이다.
이정표 없는 내 꿈길 속을
검은 강물이 도도히 흐를 것이다.

그래.
우리 그리움의 강에서 태어나
아련한 추억을 먹고사는 너와 난
검은 그리움의 종족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