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산문화21호

전설 - 조산 동명서원과 조인벽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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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993회 작성일 2010-03-2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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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628년 양주부사로 있던 조위한이 향교 이외에 서원이 없던 양양지방에 유생교육과 인재양성을 지표로 삼고 서원 설치를 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자면 이 고장에 연고가있는 선현을 향사해야 하므로 이 고장 유지들에게 숭모상징이 될 만한 先賢을 물어본즉 80고령에 前正言이었던 노경복이라는 청수한 노인이 말하기를「이 고장은 본래 서울이 멀고 山과 바다로 쌓여서 한산한 곳이었는데 옛날 고려말엽에 고려조에 忠誠하던 조인벽 선생이 이곳으로 와서 숨어살면서 후생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고 德化시켜서 이 고장을 文鄕으로 열었으니 우리도 그분의 혜택이며 아직까지도 그분의 덕망이 전래되고 있어 이 고장 崇慕賢人이라 할 수 있으니 그분을 향사하고 학도들에게 예절을 가르치고 풍속을 순화시키도록 함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여 노경복 선생을 위시하여 최정림 선생 이현일 선생등과 협력하여 서원을 창건하고 향토교육의 수도장으로 마련하여 서원 북쪽에 충현사를 세워 조양열공의 위대한 호국정신과 만고 불멸의 충절을 앙모하고 후세에 귀감이 되도록 봉향하였던 것이다.

당시 동명서원은 전토와 염전 그리고 어선을 임대해주고 그 세를 받아 경영하다가 병란때 다 소진되어 1786년 영남 순흥에 재건하였다가 그 후 1871년에 나라의 정비령에 의해 헐어버리고 1898년 강원도 관찰사 조종필이 순시 차 왔다가 빈터에 유허비만 세웠는데 그것마저 어떻게 된 영문인지 고속도로 부지가 되어 제자리에 세우지 못하고 현재 백호능선에 있는 서원 앞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 후 1975년 고속도로 건설로 철거하게 되자 양양유도회에서는 본 서원 복원을 위하여 동명서원 복구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각 읍면 유림들의 성금으로 1974년 착공하여 공사를 추진 중 자금사정 등의 익로에 봉착하자 다음해 한양조씨 종문회의 찬조금으로 공사를 계속 1982년 4월에 준공하고 5월에 위패 봉안식을 거행하였다.

충혈사 봉향한 조인벽 선생은 여말의 무신으로서 호는 우계 또는 해월정이며 함경도 덕원 출신으로 밀직부사를 역임한 용성군 돈의 아들로 1356년 아버지와 함께 동북면 병마사 유인우를 도와 쌍성수복을 비롯하여 강릉도 도원수로 외적을 물리치는데 크게 공헌함은 물론 우리 고장의 향토수호에도 많은 공적을 세웠다. 이태조와는 처남 매부사이로 이태조가 등극하면서 수차 부름을 받았으나 선생은 삼징철벽에 불사이군의 절의를 견수하여 이곳 자연경관이 수려한 당시 시상리 현 조산리에 은퇴하여 살았던 것이다.

지금 동명서원은 조산리 서쪽 뒷산 옛 수군만호영이 있던 대포영성지에 위치하여 매년 5월 유도회에서 주관하여 제사를 올리고 있으며 평일에도 참배객이 많이 찾고있다.

뜨거운 태양과 물놀이에 싫증이 나면 조산 바로 뒷산에 위치한 동명서원을 찾아 선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잠시 사색에 잠기는 것도 좋은 피서 방법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