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료 -峴山三十景(현산삼십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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峴山三十詠
山水之難於兼備 猶人才之不能通該 雖一丘一壑一水一石 尙難兼有耳幷觀 而況於江山之大 而況巨海名嶽 之相値而具美者乎
산수지난어겸비 유인재지불능통해 수일구일학일수일석 상난겸유이병관 이황어강산지대 이황거해명악 지상치이구미자호
-산과 물이 대적할 수 없이 진귀하게 서로 잘 갖추어져 있는 것을, 내같은 재주로 전부를 충분히 꿰뚫어 알리기는 능력이 모자라나 비록 언덕과 골, 물, 돌 하나하나 듣고 본바 있기는 하나 오히려 어렵도다. 하물며 강과 산이 넓고 크며 큰 바다와 명산이 상치하여 매우 아름답게 갖추어져 있다.
我邦�東八景 惟高襄二境背嶽臨海 襄之雪嶽 世稱小金剛 而洛伽之天造神創 望海宏豁 又可與高城之海山亭 爭其甲乙
아방영동팔경 유고양이경배악임해 양지설악 세칭소금강 이낙가지천조신창 망해굉활 우가여고성지해산정 쟁기갑을
-우리나라 영동팔경, 양양은 뒤에는 설악산 앞에는 동해에 임하였으니 이 두 경지는 유독 뛰어나며 양양의 설악산은 세칭 소금강 이라고도 하고 또 하늘의 조화로 신이 창조한 낙산사에서 바라본 바다는 널리 열려있을 뿐더러 또한 고성의 해산정(바다, 산, 정자)와 가히 우열을 다툰다.
此眞山海之具美者 而且其邑號適符於中華勝區 峴山漢水 雖倣古立名
차진산해지구미자 이차기읍호적부어중화승구 현산한수 수방고립명
-이는 참으로 산과 바다가 아름답게 갖추어졌으며 또 고을의 이름이 지세가 훌륭함이 중국의 현산과 한수(남대천)가 부합하고 알맞아 비로소 본을 따서 이름을 정했는데,
山翁叔子之風流餘韻 顧名興懷 想像而不可忘 其粧點湖山 賁飾物態者 可謂 增價百倍矣
산옹숙자지풍류여운 고명흥회 상상이불가망 기장점호산 분식물태자 가위 증가백배의
-늙은 내가 만년에 이르러 풍류의 운치와 명예를 돌아보고 일어나는 기쁨을 잊지 않겠다고 상상하니, 그 단장한 자연의 환경, 잘 꾸며지고 다스려진 만물의 형상은 이르자면 그 가치가 백배나 더해진다.
邑舊無誌 樓觀寺刹 間有寂寥篇詠 而只記一時一區之景而已 曾無搜剔一州之勝觀著錄而表章者 余甚惜焉 迺攷勝覽所載
읍구무지 루관사찰 간유적요편영 이지기일시일구지경이이 증무수척일주지승관저록이표장자 여심석언 내고승람소재
-옛 고을의 기록이 없어 망루와 사찰을 틈을 내어 적적하고 고요한 속에서 시문을 지어 읊으며 다만 한때 한구역의 경치만을 기록해서 일찍이 없던 것을 찾아내어 한 고을의 경치를 관상하며 기록하여 밝히니 내 어찌 지나치게 아까워하리. 이에 상고하여 여지승람에 싣는 바이다.
且訪邑 中耆舊 篇爲峴山三十京 各府短章 �記其勝 仍要三淵�子益和之
차방읍 중기구 편위현산삼십경 각부단장 약기기승 잉요삼연김자익화지
-또 읍을 찾아 늙은이 가운데 현산 삼십경의 시문을 짓고자 각부에 승경을 간략하게 기록한 짧은 글을 요구하니, 삼연(三淵) 김자익(�子益)이 응하여 화답 하였노라.
噫! 永州溪山 特是窮荒絶激 黃茆苦竹間 尋常一淙崢而自經子厚題品
희! 영주계산 특시궁황절격 황묘고죽간 심상일종쟁이자경자후제품
-아! 영주의 계산 특별히 기근으로 굶주림이 몹시 격렬하다. 누런 순채와 대나무 사이 물이 흐르는 소리 하나같이 평범하니 자경자(自經子: 스스로 목메어 죽은 자식)를 후하게 고하우열을 판정했다.
得與名山大湖幷傳而齊美 至今讀其記者 不覺窅然神遊 而今此溟 岳仙區 壞覽異蹟 無人發揮 山水之亦有遇不遇者 豈不信哉
득여명산대호병전이제미 지금독기기자 불각요연신유 이금차명 악선구 괴람이적 무인발휘 산수지역유우불우자 기불신재
-명산(설악산)과 대호(청초호, 쌍호, 포매호)가 더불어 어울려져 가지런히 아름답게 전해지는, 지금까지의 그 기록을 지금 읽는바 신이 유상함을 깨닫지 못하는 듯 정신이 멍하니 이제 이 바다와 큰 산은 선경이요.
살펴보니 진기함이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 발휘된 것이려니 산수가 역시 때를 만나거나 만나지 못했다고 어찌 불신하리.
顧余無文 不可謂山水遇其人 而余之遇山水則幸矣
고여무문 불가위산수우기인 이여지우산수칙행의
-내가돌아보니글이없어사람을만나나산수를설명할수없었는데내가산수를찾아대하였으니곧행이로다
姑以掘詠及和章 揭諸屛間 以俟後來者之因此闡發焉
고이굴영급화장 게제병간 이사후래자지인차천발언.
-잠시 읊기도 하고 글로 화답도 하다가 병풍에 모두 게재하였으니 장차는 이것에 의하여 밝혀 펴질 것이다.
※(주) : 본문의 전후에 나오는 산옹(山翁)과 백접리(白接籬)는 부사 이해조가 자신을 칭한 단어임. 시종(詩宗)이라 존경받는 이백(李白)의 시“양양가(襄陽歌)∙양양곡사수(襄陽曲四首) 중에 산공(山公)이 곧 산옹(山翁)이다.
*진(晉)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사람인 산도(山濤)의 다섯째아들 산간(山簡)을 말함.
그가 정남장군(征南將軍)이 되어 양양(襄陽)의 태수로 있을 때 호족(豪族) 습(習)씨의 정원(習家池)에 자주 놀러가 하루 종일 술 마시고 즐기다가 도랑 올 때는 흰 두건을 거꾸로 쓰고 (倒著白接籬) 말도 거꾸로 타는 등 풍류기화(風流奇話)를 많이 남겼다.
현산30경 지은이 소개 이해조(李海朝, 1660~17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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