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2009 양양의 6·25 비화 목록
    말라리아 때문에 아군이 양양군을 수복하면서 인공시절 주요 보직을 맡았던 기리의 간부(인민위원장, 세포위원장, 농민위원장, 여맹위원장 등)를 색출하였는데, 당시 마을의 주요 간부들은 모두 이북으로 피난을 들어가고 난 다음이라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주요 마을의 간부들은 …
    운영자  2010-04-06  2585 
    북암리 마을이 없어진 사연 북암리는 양양군 서면의 산골마을이다. 북암리를 가려면 송어리를 거쳐 들어가거나 송천리를 거쳐 들어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을 뿐이다. 그만큼 외져서 주민들도 그리 많지 않은 산골마을인데, 1945년 해방이 될 무렵만 해도 16호가 살고 있었다…
    운영자  2010-04-06  2900 
    기리는 피난골 기리는 6․25 전쟁의 와중에서도 집 하나 불탄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이곳이 유엔군의 폭격으로부터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양양읍이 공습을 받아 불탄 다음, 양양군 인민위원회를 비롯하여 각종 기관들이 기리로 이동해 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 하…
    운영자  2010-04-06  2656 
    벌꿀이 뭐기에 1950년 북암리의 주민들 중 태반은 다른 마을로 이주하였다. 마상철도 일가붙이가 많이 이주해와 있는 기리로 이주하였다. 38선 접경에서 남북한 간에 충돌사건이 발생하였기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벌어지고 전황은 처음에 인민군에게 유…
    운영자  2010-04-06  2685 
    토박이는 안 데려가고 마상민은 북암리에 살다가 1950년 6․25가 나던 해에 기리로 이사를왔다. 이사 오고 난 몇 달 후였다. 6․25가 터졌을 무렵인데, 인민위원장이 찾아오더니 큰아이(마주환)가 인민군에 갈 나이가 됐으니 군대를 가야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인민위…
    운영자  2010-04-06  3054 
    소를 잡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해가 바뀌었다. 그 사이에 기리는 아군이 수복을 일시 하였다가 다시 물러나고 1951년초에는 인민군이 점령하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정초에 회식을 하려 소를 잡기로 하였다. 잡을대상을 물색하던 중 외딴 곳에 사는 정연두 씨 집의 소가 …
    운영자  2010-04-06  2575 
    감 때문에 생이별을 하다 상복리에 사는 평양댁은 참으로 얄궂은 운명 탓에 어머니와 생이별을 해야 했다. 평양댁은 1936년 생이었다. 양양읍에서 출생한 그녀는 그 해 병자년 물난리를 겪고 곧바로 평양으로 갔다. 아버지가 평양에서 고무공장을 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양양…
    운영자  2010-04-06  3249 
    동무 반갑소 중복리에 7남매를 낳아놓고 살던 남자가 있었다. 국군이 들어오고 난 뒤 물치에 나가 국군 장교를 보고 “동무 반갑소.”라고 했다. 그러나 듣는 국군장교는 ‘참 이상한 사람도 다 있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중복리 사람은 물치에서 일을 보고 마을로 올라왔다…
    운영자  2010-04-06  2667 
    당목과 불 멀미 사천리는 지금은 마을제사를 지내지 않지만, 인공 때는 그 어려웠던 시절에도 불구하고 내무서 모르게 마을제사를 지내곤 하였다. 어느 해(주106) 겨울에 눈이 많이 와 서낭나무가 쓰려져 버렸다. 미신타파에 앞장섰던 좌익사상에 투철한 마을 사람 하나가 있…
    운영자  2010-04-06  2798 
    손자를 살린 할아버지의 강단 사천리 사람 중에 인민군에 갔다가 낙동강 전투에서 후퇴할 적에 도망하여 집으로 돌아온 이가 있다. 그러나 주위에 대놓고 우리 아이가 돌아왔다고 말을 할 때가 아니었다. 집 다락에 숨겨놓고 몰래 조석으로 공양을 하면서 살고 있을 때였다. 하…
    운영자  2010-04-06  2618 
    말똥을 걸러서 먹다 소련군은 주식은 계란을 풀은 밥을 해먹기도 하지만 편하게 식사대용으로 먹는 것은 헐레발이란 빵이다. 평상시엔 이것을 베개처럼 베고 자다가 일어나면 이것을 툭툭 털고는 뜯어먹는다. 이것을 본 양양사람들은 참으로 미개하다 욕을 했지만, 그러면서도 음식…
    운영자  2010-04-06  2631 
    국군이 남자들은 다 쏴 죽인대 1950년 10월 처음 국군이 들어올 적에, 지금 생각해보면 낭설이지만, 국군이 들어오면 남자들을 모두 쏴 죽인다고 하였다. 사천리에 사는 K의 아버지는 그 말이 무서워 이북으로 피난을 들어가면서 K에게 하는 말이 “며칠 있으면 나올 테…
    운영자  2010-04-06  2685 
    사천리가 불에 타지 않은 이유 L은 사천리에 살지는 않지만, 사천리가 처가였다. 국군이 양양을 수복한 다음 하루는 L이 처가에 일이 있어 사천리에 왔다. 일을 보고 나가는데 국군이 올라오고 있었다. 손에는 솜방망이에 불을 붙여 든 채. L은 물었다. “무슨 일이오.”…
    운영자  2010-04-06  2908 
    왜 살려주었을까 사천리의 K는 17살이 되자 인민군에 갈 나이가 되었지만, 키가 작아 인민군에도 가지 못했다. 그러다가 양양군이 국군에 수복이 되었고, 또 인민군 패잔병이 올라온다고 할 어수선할 때였다. 하루는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서 내려오는데 국군이 부르는 것이었…
    운영자  2010-04-06  3137 
    고급중 스트라이크 사건 인공 때 양양지역의 중학교 과정은 초급중과 고급중이 있었다. 각기 3년 과정이었는데, 특기할 만한 것은 인공의 학제가 9월 1일 개학과 7월 15일 졸업이었다는 것이다. 고급중은 남한의 고등학교 과정에 해당한다. 고급중의 자리는 1학년 때는 서…
    운영자  2010-04-06  2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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