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2009 양양의 6·25 비화 목록
    6․25 발발 직전 남한의 군 작전 상황(주38) 5월-6월의 위기설이 파다한 가운데 1950년 4월 10일 육군총참모장에 재기용된 채병덕 소장은 4월에서 6월에 북한군의 동향과 국내정세를 고려하여 세 번에 걸친 경계 강화조치를 취하였다. 우선 4월 21일에 인민군과…
    운영자  2010-04-07  5463 
    6․25 직전 북한군 상황(주39) 전쟁 전 인민군은 10개 사단을 보유했다. 독립전차연대를 추가로 편성함으로써 기존의 기갑연대와 더불어 T34 전차를 총240대 보유했다. 내무성 관장의 보안대도 증강하여 치안은 물론 38선의 국경경비도 강화하였다. 1947년 7월 …
    운영자  2010-04-07  2851 
    6․25 때 동해연안 조선인민군 작전(주41) 제1경비여단은 제5보병사단 예하 제10보병연대, 포병대대 및 자주포 대대와 협동으로 동해연안의 도로 및 소로를 따라 진격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최근 임무는 원일전리, 동산리 지역을 점령하는 것이었다. 이후 양양 동남쪽…
    운영자  2010-04-07  3307 
    의용군(주42) 1950년 7월 1일 북한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전시동원령을 공포하였는데, 그 내용은 1)전지역에 걸쳐 동원을 선포 2)동원대상은 1914년-1932년(18-36세) 사이의 전체공민 3) 동원령은 7월 1일부터 발효한다 등이었다. 이에 따라 남한점령…
    운영자  2010-04-07  2702 
    1950년대 북한의 토지개혁(주43) 북한이 남한 점령정책 가운데 가장 먼저 착수하고 정성을 쏟았던정책은 토지개혁이었다. 1950년 7월 4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공화국 남반부지역에 토지개혁을 실시함에 관하여’라는 제하의 총11개조의 정령을 발표하였다. …
    운영자  2010-04-07  3695 
    대한청년단의 무장 시도(주44) 이대통령은 대한청년단 50만 명을 무장시키기로 결심하고 미국에 장비제공을 요구하였다. 대통령의 특명을 받은 장면 주미대사는 12월 6일 미 국무부를 방문하여 이 문제를 논의하였으나 국무부는 미국이 유엔군에 대한 장비개선도 부담하고 있어…
    운영자  2010-04-07  2839 
    수색대대(주45)(주46)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를 하고 있던 국군 제8사단에서는 북한지역에 있는 반공치안대원 1300명을 수색대대로 편입시켰다. 이들은 전쟁 전부터 북한지역에서 반공투쟁을 했던 사람, 전쟁 후 인민군 징병거부자, 천도교 청우당이나 민주당원 등이었다.…
    운영자  2010-04-07  3780 
    38선 돌파에 대한 정부의 입장(주47) 9월 30일 국군 제3사단이 울진․삼척․강릉을 거쳐 38선에 도달하고 수도사단이 영월․평창을 거쳐 38선에 도달하자 38선 돌파문제가 가장중요한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유엔군이 38선을 돌파하여 북진을감행할 경우, 북한 정권…
    운영자  2010-04-07  3009 
    국군의 38선 돌파결정(1950년 10월 1일)(주48) 유엔군측은 9월말 9․27훈령에 따라 은밀하게 38도선 돌파작전계획을 준비하는 한편 공개적으로 결의안을 추진중이었다. 그러나 이 무렵 정부는 928훈령에 관한 통보를 받지 못하고 북진명령이 하달되지 않자 대단히…
    운영자  2010-04-07  3362 
    양양-간성 진격전(1950년 10월)(주49) ① 양양-간성 진격전의 개요양양-간성 진격전에 있어서 아군 제 3사단(사단장 준장 이종찬)은 적의 강력한 저항을 물리치고 38도 분계선을 넘어 양양으로 돌입, 후방에서 교란전을 펼치는 적을 효과적으로 제압하면서 간성으로 …
    운영자  2010-04-07  3096 
    무지개 부대 동해안 파견대(주51) 제1군단에 배속되어 활동하던 제5유격대는 군단의 북진경로인 영월, 진부, 강릉, 양양으로 북상하면서 잔적들을 소탕하고 설악산으로 들어가 적의 근거지를 괴멸시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대원의 규모가 950명이었으나 대원 절반이 일제99식…
    운영자  2010-04-07  3875 
    양양-서림지구 전투(1950년 12월)(주52) ① 양양-서림지구 전투의 개요아군 및 우군은 중공의 침략으로 전 전선에서 축차적인 철수를 단행하여 38도 분계선 부근인 임진강-연천-춘천 북방-양양을 연하는 선에서 새로운 방어선을 형성하였다. 이에 동부전선에서도 춘천 …
    운영자  2010-04-07  3224 
    대관령 확보 : 51년 1월의 상황(주53) 국군 제1군단은 태백산맥 동쪽의 동해안에서 중공군의 신정 공세를 받았으나 비교적 접적이 경미하여 38선 북쪽 진지를 고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군의 전반적인 전선조정에 따라 남쪽으로 철수하여 1월 10일경에는 송계리-삼척…
    운영자  2010-04-07  3660 
    양양 진격작전(1951년 3월)(주54) 제1군단장은 양양을 공격하기 위하여 수도사단에 3월 18일부터 연곡천 북쪽지역에 대한 강력한 수색정찰을 실시하도록 하였다. 이때 군단 정면의 인민군 제69여단도 북으로 철수한 제10사단의 일부를 증원받아 양양을 방어하기 위하여…
    운영자  2010-04-07  2839 
    중공군의 4월 공세(1951년 4월)(주55) 유엔군은 3월중순 1․4후퇴로 상실한 서울을 재수복하고 4월초에 주력부대들이 38선 북쪽의 임진강-전곡-화천저수지-양양을 연하는 이른바 캔사스(Kansas)선으로 진출하였다. 이로써 전쟁전의 영토를 회복하고 방어에 유리한…
    운영자  2010-04-07  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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