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2009 양양의 6·25 비화 목록
    도리 민주당 사건(주71) 도리는 38선 이남인 장리로부터 200미터의 지점인 까닭에 서북청년회의 반공파장이 밀려와서 반공의식을 고취시켰다. 반공정신에 불타는 청년들은 손양면 민주당 총책인 이기호를 중심으로 암암리에 비밀결사망을 조직하고 공산당을 타도하고 민주국가 건…
    운영자  2010-04-07  3399 
    장리 지서원 납치사건(주72) 현북면 장리는 강을 경계로 이남인 까닭에 장리에 지서가 설치되어 38선상의 국토방위의 전초기지며 도리는 강남산정까지가 38선인 연고로 이북의 치안대와 소련군이 주둔하여 38선상에서 서로 총질하는 분규가 비일비재하게 생기고 또 빈번히 납치…
    운영자  2010-04-07  2855 
    김창수, 이선영의 죽음(주73) 1945년 해방이 되면서 강현면 하복리에서는 좌익분자 청년들이 날뛰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이종상은 왜정에 반대하고 소련에 망명하여 고아원장으로 공산주의자가 되어 귀향하니 그 문중청년들은 민청, 부녀동맹의 중견인 과격공산분자가 되었다. …
    운영자  2010-04-07  4728 
    이근우의 죽음(주74) 낙동강 전투에서 패배한 북괴군은 총퇴각을 개시하고 동해를 끼고 북괴군 김무정은 북상하였다. 이것이 그 당시의 사실이다. 1950년 10월 2일 북괴군이 후퇴하면서 강선리 인민위원회에 와서 전 주민을 간성읍까지 피난할 것을 명령하였다. 주민들은 …
    운영자  2010-04-07  2626 
    김남형․김학래의 죽음(주75) 김학래는 김남형의 장남으로서 해방 이후 반동분자로 지목되어 갖은 고초를 겼었으며 6․25사변 후 국군이 진격하자 마을 이장과 강현면 한청단장으로 활약하다가 1․4후퇴 때 피난을 가지 못하고 은신 중 인근마을 극렬분자들의 밀고로 적은리 주…
    운영자  2010-04-07  3103 
    영덕리 공비토벌 개황(주76) 1953년 11월 15일 강원지구 연락총책공비 2명이 서림지서에 자수하여 왔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변안전을 받기 위해 38선에서 정족산까지의 연락조원이 지금 영덕리 외딴집 빈집에 잠입해 있다는 정보를 제공해왔다. 서림지서장 권영렬 경사는…
    운영자  2010-04-07  2838 
    태백산지구 남침공비소탕(주77) 경북 보현산지구에서 우리 국군과 경찰의 포위망에 발이 묶여 섬멸직전에 놓인 김달삼부대를 구출하고자 북괴는 전에 없던 강력한 정예부대 700명을 월남 침투시켰다. 김상호 및 김무현이 각각 반을 맡아 인솔한 이들 극렬분자로만 편성된 소위 …
    운영자  2010-04-07  3604 
    행정수복(주78) 1950년 10월 2일을 기하여 양양군자치위원회를 구성하고 각면에는 면자치위원회를 구성하여 행정을 실시하였고 치안확보를 위하여 군치안대와 각면치안대를 두었다. 당시 자치대장으로는 김영제 씨를 추대하고 특공대장인 김민하는 동년 11월 22일에 치안대장…
    운영자  2010-04-07  2945 
    반공투사 이야기(주80)(주81) 1948년 6월 현북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윤석진, 윤석빈, 박상진, 박용호, 윤석근, 장원식 등 6명은 공산주의 사상일변도 교육에 염증을느끼고 그들의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다고 학대가 점점 심해져 집단 월남했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배움…
    운영자  2010-04-07  3022 
    현북중학교 폭격사건(주82) 1948년도 하광정리 205번지 부근에 설립된 현북중학교는 38선 이북지역인 기사문리, 상광정리, 중광정리, 하광정리, 손양면(여운포리, 상운리, 동호리)를 학구로 150여 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었다.6․25전쟁이 나고 북한군이 대구 외…
    운영자  2010-04-07  2874 
    다시 빼앗긴 성당(주83) 8․15는 양양주민과 교우들에게 일제로부터 빼앗긴 정신적 자유와 물질적 수탈로부터 해방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해방과 더불어 일제에게 강제로 빼앗겼던 양양성당 건물은 다시 교회 수중으로 돌아왔다. 일본인에게 빼앗긴 성당 대신 조그만 방…
    운영자  2010-04-07  3074 
    제2부 답사자료 양양군은 해방이 되면서 38선이 가로질렀다. 그러는 과정에 지금의 현남면, 현북면의 9개 리, 서면의 3개 리는 38이남이 되었다. 따라서 이들 마을과 접경한 지역에선 상호간 불상사도 많았다. 그러나 그 불상사들도 모두 우리들의 자의에 의해 만들어진 …
    운영자  2010-04-07  3498 
    1) 38선 이남의 양양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터지면서 10월 1일 38선을 돌파할 무렵을 전후하여 38선 이남 지역은 약 100일 정도 인공의 통치를 받았었다. 이 기간을 일러 주민들은 ‘100일 정치’라 하였다. 실제 100일은 되지 못하지만 약 100일…
    운영자  2010-04-07  2703 
    100일 정치와 자아비판 38선 이남의 현남면 사람들과 현북면 사람들은 6․25가 터지고 9․28수복이 될 때까지(실제 38선을 넘은 것은 10월 1일) 약 100여 일의 기간을 100일 정치라 불렀다. 이 기간 동안에는 피난을 거의 갈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인민군…
    운영자  2010-04-07  2765 
    호국군(護國軍) 현남중대 현남면에는 호국군 중대가 있었다. 상위부대로 주문진에 대대가 있었고, 대대로부터 명령을 받아서 일을 처리했다. 그래서 그 상위부대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주85) 다만 군(주86)과 긴밀한 협조관계에 있었다는 것은 분명했고 군의 명령을 받아 …
    운영자  2010-04-07  2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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