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다시 빼앗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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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108회 작성일 2010-04-0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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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빼앗긴 성당(주83)

8․15는 양양주민과 교우들에게 일제로부터 빼앗긴 정신적 자유와 물질적 수탈로부터 해방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해방과 더불어 일제에게 강제로 빼앗겼던 양양성당 건물은 다시 교회 수중으로 돌아왔다. 일본인에게 빼앗긴 성당 대신 조그만 방에서 겨우 미사를 봉헌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다 해방과 함께 성당도 되찾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1년이라는 극히 짧은 시간뿐이었다. 양양지역에 진주한 소련군은 이광재 신부를 계속 감시하면서 양양에서 비교적 높은지대에 있었던 성당 건물을 자신들의 무전실로 사용하려고 이신부가 공소를 순방하기 위하여 자리를 비웠을 적에 성당을 강제로 접수하였다. 남아 있던 성당식구들은 졸지에 당한 일이었지만, 이러한 사고를 예상하고 있었던 이신부의 지시대로 성당에 머무르던 이신부의 모친과 식복사 그리고 당시 이신부를 많이 도와주고 있었던 김경태(젤마나) 등은 이신부에게 급전을 보내 이신부를 급히 불러들였다. 그러나 이신부가 돌아왔다고 해서 빼앗긴 성당을 즉시 돌려 받을 수는 없었다.

성당을 강제로 접수한 소련군들은 성당을 삥 둘러싼 채 모닥불을 피워놓고 아무 데에나 드러누워 잤다. 소련군 장교들은 성당에 물건을 쌓아놓고 성당에서 기르던 개에게도 빨간 칠을 하였다. 성당을 빼앗겼지만, 이신부는 성당 안에 있던 비밀 다락에 성체를 모셔놓고 지내면서 몰래 미사를 드렸다. 몰래 미사를 드리던 어느 날 갑자기 소련군이 들이닥치자 이들은 순간적으로 성체를 한 웅큼씩 입안으로 넣고 삼켜버리면서 이 비밀장소를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소련군이 물려난 뒤 성당을 잠시 되찾을 수는 있었지만, 소련군을 대신하여 양양지역을 지배하기 시작한 인민군은 다시 성당을 빼앗으면서 부속건물마저 접수하고 말았다. 성당식구들은 어쩔 수 없이 남문리에 있던 적산가옥인 호전의 집으로 쫓겨나 공산당의 감시를 받으면서도 이 집에 거주하며 미사를 집전하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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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시 불타기 전의 천주교 성당



소련군이 물러간 뒤에 정부를 수립한 북한의 공산당은 종교와 종교인들을 노골적으로 박해하였다. 양양본당의 이신부는 일제에 빼앗겼다가 해방으로 겨우 찾은 성당을 지키기 위하여 공산당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이데올로기에 관한 말은 하지 않았다. 미사시간에 이신부가 강론을 하면 인민군이 군화를 신은 채 성당 뒤에 서서 총을 들고 무슨 말을 하는지 계속 들었다. 그러나 이신부는 계속 강론을 하였다. 이신부가 공산당에게 불려가 조사를 받을 때, 사제인 자신은 교우들이 양양에 있는 한 양양을 떠날 수 없으며, 사제로서 양양에 있는 교우들을 끝까지 보호하여야 하는 것은 사상과는 관련이 없는 문제이므로 여기에 남게 해 달라고 사정하였다.

1946년경부터 양양분당은 38선에서 가장 가까운 본당이어서 멀리 연길, 함흥, 원산 등지에서 수많은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이 남하하여 양양본당에 들르면, 이신부는 일일이 안전하게 숨겨 주고, 편의를 보아주다가 본당교우들을 시켜 무사히 월남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주었다. 범부리의 김봉만은 달리기를 잘하였다. 그래서 이신부의 부탁을 받고 약 15회 정도를 남북을 왕래하면서 단 한 사람도 희생시키지 않고 무사히 월남시켰다. 당시 월남한 사제 중에는 김성환(빅토리노) 신부와 허창덕(치로) 신부가 있었고, 성 베네딕트 수도회의 서석태 부제와 한 명의 신학생도 있었다. 수녀들은 연길 성 베네딕트 수녀원의 김 제르투르다, 안 롯, 사베시아, 박 데레사, 이 에와, 이 라우데스, 김 블라치다, 김 베네딕다, 이 마우라, 임 그레고리아 등이었다.

이광재 신부는 6․25가 발발하기 전날인 1950년 6월 24일 체포되어 원산 와우동 형무소 특사감방에 수감되었고 10월 8일 41세의 일기로 순교하였다. (사진 출처 : 천주교 양양교회의 엽서. 자료제공 : 양양읍 김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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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3)『양양본당 80년사』, 천주교 춘천교구 양양교회 편, 2001, 123-150쪽, 여기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