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영덕리 공비토벌 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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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841회 작성일 2010-04-07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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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덕리 공비토벌 개황(주76)

1953년 11월 15일 강원지구 연락총책공비 2명이 서림지서에 자수하여 왔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변안전을 받기 위해 38선에서 정족산까지의 연락조원이 지금 영덕리 외딴집 빈집에 잠입해 있다는 정보를 제공해왔다.

서림지서장 권영렬 경사는 순경 한병열, 김호규 두 사람에게 명하여 토벌작전에 임하였다. 두 순경은 한청 대원 7명(김연수, 김성기, 정연식, 경로군, 이경수, 윤봉래, 이대영)과 자수공비 1명을 인솔 현지에 도착하여 빈집을 포위하고 상황을 살펴본 즉, 마침 백설이 깔린 우물길에 발자국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접근해갔다.

마침 방안에서는 공비 2명이 저녁식사를 마치고 그 중 1명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이대영 단원이 생포하려고 공포를 쏘면서 “손들어” 하고 소리쳤더니 공비는 방으로 뛰어들어가 소지하였던 M1소총과 M2칼빈총으로 응사하여 왔다. 그리하여 “완전포위 되었으니 자수하라”고 권고하였으나 끝내 반항함으로 그 중 1명을 사살하고 다른 1명은 부엌 쪽으로 도주하면서 김연수 단원에게 사격을 가해 김연수는 그 자리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추적에 나선 우리측 단원들은 논둑 밑에서 최후발악을 하는 나머지 1명을 사살하였다. 그들 공비의 주머니에서는 암호연락문이 나와 아군의 공비토벌작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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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6)『양주지』, 양주지 편찬위원회, 1990, 144-1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