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도리 민주당 사건

페이지 정보

조회 4,434회 작성일 2010-04-07 11:20

본문

 도리 민주당 사건(주71)

도리는 38선 이남인 장리로부터 200미터의 지점인 까닭에 서북청년회의 반공파장이 밀려와서 반공의식을 고취시켰다. 반공정신에 불타는 청년들은 손양면 민주당 총책인 이기호를 중심으로 암암리에 비밀결사망을 조직하고 공산당을 타도하고 민주국가 건설을 위한 행동대를 결성하였다. 이기호는 반공의식이 투철하고 투지만만하여 반공정착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매진하는 기개의 남아로서 행동대 선봉에서서 활약하였다. 이 조직의 총책은 이기호이고 행동대원은 이종윤, 이종명, 이종현, 노재봉, 이종운, 김정수, 양인석, 이종천, 이종선, 양재일, 이종원, 이종성, 이종렬, 양재진, 이종복, 이봉래, 안봉도 등이었다.

그리고 연락책임은 이종천과 노재봉이었다. 이들은 이쪽 정보를 장리지서를 통하여 이남의 8사단과 서북청년회와 호림부대공작대에 통보하고 또 그들의 정보와 그들의 무기를 공급받아 공산당을 전복하려는 비밀까지 공작하였다. 또 남북간의 물물을 교류하여 공작자금을 마련코자 공작하였다.

그들 공산당 마수는 이 곳이 38이남과 접경임을 중시하였고 정보원을 배치한 것을 까맣게 모르고 그 정보원과 흉금을 털어놓고 공작을 진행하였다. 이 정보원이 바로 도리 인민학교장 안봉도였다. 이들은 1947년 7월 7일 공산당 총회 개최 시에 회의장을 폭파하고 적색분자들을 피살하려고 계획한 것을 사전에 정보원 안봉도의 고발로 1947년 10월 17일에 전원이 양양내무서원에게 체포되었다. 도리 청년들은 거개가 체포되니 도리는 쑥밭이 되고 울음바다로 화하였다. 이들은 양양재판소에서 즉결판결을 받아 다음과 같이 언도받고 원산형무소에 수감되어 복역하였다.

이기호(무기) 이종윤(15년형), 이종명(7년형), 노재봉(7년형), 이종운(13년형), 김정수(7년형), 양인석(8년형),
이종천(12년형), 이종선(7년형), 양재일(7년형)

- 이종현은 체포 전에 월남하였다가 부모처자를 인솔하여 월남하려 다시 입북하였다가 체포되어 사형언도를 받았다.
- 이기호는 복역 중 중노동에 영양실조로 가련하게도 옥사하였다. 기타 죄인은 1949년 2월 6일에
  잔인하게도 배에 실려 바다에 쓸어넣어 수장하여 버렸다. 참으로 천인공노할 일이며 통곡하여도 남음이 있다.
- 이 사건 이후 도리 주민은 모두 소개 이주시켰다.
- 대원 중 사전에 월남하여 국군에 편입 6․25 때 북진용사들은 다음과 같다.

이종원(현 주리) : 장리 대한청년단장
이종성(현 도리) : 계림부대 공작대원
이종렬(현 서울) : 〃
심상진(현 강릉) : 〃

- 도리 인민학교장 안봉도는 사건 공로자로서 김일성 훈장과 표창을 받았다.
- 민주당 양양지부 : 지부장 이근화, 총무부장 이기호, 조직선전부장 김태영

----------------------------------------------------------------------------------------------------------------------------------------------

(주71)『양주지』, 양주지 편찬위원회, 1990, 140-1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