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반공유격대 및 특공대의 활동과 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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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173회 작성일 2010-04-0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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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공유격대 및 특공대의 활동과 전과(주70)

김여수는 1946년에 월남하여 반공청년들과 계림유격대를 조직하고 동해지구 38선의 파견대장으로 게릴라 작전과 곤우골 기습공격으로 상당한 전과를 올렸고 6․25 당시에는 육군 3사단 정보수색대장으로 북진 시에는 양양을 선두로 진격하여 현산공원에 태극기를 게양하였다.

당시 양양에는 노약자만 남고 애국청년들은 행방을 감추었다. 탐색한 결과 북괴군은 군민을 후퇴하도록 명령하였으나 애국청년들은 산중에 피신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한 김여수는 애국청년 전원을 구출할 것을 결심하고 강릉 주문진의 반공청년들이 다수 집결하였다는 보고를 받고 즉시 현지로 달려가 100여 명의 청년을 인솔하고 익일 양양에 도착하여 산중에 피신한 청년들을 찾아내어 군청 소재지인 남문리에 집결시켜 놓고 육군 제1군단 헌병부장의 승인을 얻어 양양자치방위특공대를 조직하였다.

김여수가 대장, 부대장은 대포리 이홍석, 작전참모는 김현학이 맡아 북괴군 패잔병 소탕작전에 그 공적이 컸다. 특히 북괴군 패잔병 1개여단이 북상 시 속초전투에서 교전하여 큰 전과를 올렸고 우리 특공대원도 5명이 전사하였다. 그 유골은 보광사 뒷산에 안장하고 지금은 위령탑에 그 이름을 새겨 그 영령을 추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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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0)『양주지』, 양주지 편찬위원회, 1990, 139-1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