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학생의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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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784회 작성일 2010-04-07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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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의거 사건(주66)

1947년 12월에 악독한 공산당의 만행에 의분을 참지 못하고 있던 양양고급중학교 학생 고재철, 안재승. 임세삼, 이창규, 백윤하, 손양면 상왕도리 이상소, 남○○을 선두로 하여 재학 중 월남하여 서북청년회에 활동하고 있던 김주철과 무기탈취방법을 모의하고 소련군 창고에서 권총 5자루와 화약3상자를 탈취하였다. 그리고 공산당 간부와 소련군 정보부 간부를 살해할 계획을 김기복 학생 집에서 의거 모의하다가 탄로되어 당시 양양고급중학교 김운봉 교사 집에서 잠복하였다가 1947년 12월 31일 의거 3일만에 전원 피체되어 원산형무소에 끌려 갔다.

일자 미상으로 당시 강원도 인민재판소 부소장 윤두병(해방 당시양양군 내무과 촉탁. 손양면 하양혈리 거주)의 판결로 고재철20년형, 안재승18년형, 그 외 학생은 15년형을 언도받았는데, 이들은 정치범이라 노역도 시키지 않아 피골이 상접한 몰골이 되어 함흥 형무소로 이감하였다.

안재승은 1950년 8월 20일 옥사하였다는 통지가 가족에게 전해졌다. 임세삼, 김창규는 1950년 4월 13일에 청진형무소에 복역하고 고재철은 함흥형무소에서 1950년 4월 13일 부친 고광익과 마지막 면회를 하였으나 국군 진격 시에 피살되어 한 많은 이 세상을 등지고 반공전선에서 산화하였다.

- 당시 고급중학교장은 김종성이다.
- 김주철은 18세의 학생으로 신의주 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 노복현, 김복기, 박을병, 백윤하도 원산형무소에서 복역하니 모두한 클럽이다.
- 교사 김운봉은 학생은닉불고지죄로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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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6)『양주지』, 양주지 편찬위원회, 1990, 134-1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