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반공의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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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103회 작성일 2010-04-0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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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공의거 사건(주64)

1947년에서 1949년에 걸쳐 혹독한 괴뢰치하에서 온갖 자유와 권리를 빼앗긴 우리 민족의 반공의식은 나날이 높아가고 기회를 노리고 무서운 눈초리를 피하면서 지하공작을 개시하였다.

그리하여 북한의 각종기밀을 탐지하여 남한 서북청년회와 기타 군 정보당국에 제공하고 그 배후조종으로 반공의거를 계획하다가 사전 발각되어 반동분자라는 죄명으로 징역3년에서 무기까지 받은 자가 50여 명에 달하였다. 무서운 고문을 받으며 취조 중 사망 혹은 감방옥사자가 수명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양양면 군행리 김양진과 서면 최병주가 주모자가 되고, 김동근, 김문학, 이영운, 서면 범부리 신동만, 이상복, 이귀룡, 이형우, 우암리 장진팔, 김여영, 김운건, 김을성, 김현주 등은 자기 생명을 초개같이 여기고 다만 공산주의를 반대하여 자유를 위하여 괴뢰정권의 파괴공작을 암암리에 계획하고 서북청년회와 정보를 교환하며 지하운동을 전개하다가 불행하게도 발각된 후 원산형무소에서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갔다.

신동만, 윤규백은 억울하게도 원산형무소에서 옥사하고 대개는 복역 중 6․25 국군 진격시 방공호 속에서 총살당하였다고 전한다. 김문학, 천봉득은 이 과정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출하여 귀향하였다. 이영운은 피체 시 탈출하여 구사일생으로 월남하여 현재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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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4)『양주지』, 양주지 편찬위원회, 1990, 133-1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