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밥에 취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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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561회 작성일 2010-04-0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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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에 취하다니

1950년 8-9월 용호리의 K는 17살에 인민군을 갔다. 처음에 평안도 양덕으로 갔는데, 가는 도중에 안변을 지나갔다. 그때 비행기 폭격이 심하여 비행기가 폭격을 할 때마다 인근 과수원으로 숨어들었다. 숨어든 와중에 사과를 못 본 채 할 수 없어 한두 개 맛보았는데, ‘안변사과’라는 말이 있듯이, 참으로 안변 사과는 크고 맛이 있었다.

양덕에서 훈련을 받던 중 국군이 진격해오자 평안도 어느 이름 모를 산협으로 도망을 갔다. 당시 양양사람 7인이 같이 행동을 하였는데, 어느 산비탈을 지나고 있는데 산비탈 가득히 옥수수가 심어져 있는 것이었다. 일행은 옥수수로 요기를 하고, 또 잠자리도 옥수수단으로 움막을 지어 하룻밤을 지새웠다. 그런데 일행이 워낙 많아 자는 중에 누군가 발이라도 뒤척이면 겨우 세워놓았던 옥수수단움막집이 허물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자던 중에 다시 일어나 움막을 세워놓고 다시 잠들곤 하였다. 사실 잠이라고 하여도 선잠이지 단잠은 잘수 없는 상황이었다. 추석이 지난 터라 날씨 또한 차츰 추워져 오고 있었기에 대강 세워놓은 움막으로는 추위를 막을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움막이라도 없으면 더욱 곤란하니 그거라도 세워놓았던 것이다.

날이 새면 산비탈을 타고 산협을 돌아 나오는데 신기하게도 한참을 가다가 보면 처음의 그 자리였다. 이렇게 3일을 허비했다. 일행은 상의했다. 이렇게 산협을 타고 돌아가다가는 사람 구경도 못하고 생을 하직하겠다. 그럴 바엔 차라리 산을 내려가자. 그래서 산 아래로 내려오니 큰길이 보이고 군용차량들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인민군복을 입은 상태라 그들에게 달려갈 수는 없었다. 일행은 민가를 찾기 시작했다. 겨우 민가를 찾아 사정을 얘기하니 주인은 어디론가 나가더니 어른옷, 학생옷 할 것 없이 한 보따리를 갖고 오는 것이었다.

일행은 그 집에 그들이 갖고 있던 무기(북한식M1, M2), 실탄 160발, 군복, 인민군외투 등을 모두 주었다. 주인도 많은 선물을 받자 밥을 해주었다. 일행은 한동안 밥이라고는 구경도 못해본 사람들이었다. 주인이 해주는 밥을 먹자 일행은 그만 식곤증이 밀려왔다. 그 길로 그들은 달콤한 잠에 빠져버렸다. 일행은 익일이 되어서야 겨우 몸을 추스릴 수 있었다. 어제 먹은 밥은 술보다도 더 취하게 만들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