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대관령 확보 : 51년 1월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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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657회 작성일 2010-04-0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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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관령 확보 : 51년 1월의 상황(주53)

국군 제1군단은 태백산맥 동쪽의 동해안에서 중공군의 신정 공세를 받았으나 비교적 접적이 경미하여 38선 북쪽 진지를 고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군의 전반적인 전선조정에 따라 남쪽으로 철수하여 1월 10일경에는 송계리-삼척 선으로 철수하였다.

군단에 배속된 수도사단은 제1기갑연대(연대장 김동수 대령)를 좌전방 송계리 부근에, 제26연대(연대장 서정철 대령)를 우전방 묵호부근의 방어진지를 점령하도록 하고, 제1연대(연대장 한신 대령)는 사단예비로 삼척부근에서 부대정비를 주력하였다. 전방연대들은 차후 공격에 대비하여 전후방지역에 대한 대대 규모의 위력수색작전으로 접적을 유지하였다.

적은 인민군69여단 및 길원팔 유격대 6천여 명이 강릉 부근까지 남하하여 강릉-구산리 선에서 방어와 유격활동을 하고 있었다.

수도사단은 2월 3일 육군본부 작명262호(1951.2.2)에 의거 송계리-묵호 선에서 주공인 제26연대가 강릉을, 조공인 제1기갑연대는 대관령-구산리를 공격하였다. 제26연대는 묵호 부근에서 옥계로 진출하여 공격하였다.

제1연대 제3대대가 신속히 남대천을 도하한 후 강릉을 우회하여 북쪽의 죽현동으로 진출하면서, 후방퇴로차단을 우려한 인민군 69여단은 강릉 사수 의지를 포기하고 철수하기 시작하였다. 제26연대는 7일 10시에 강릉을 점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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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3)『한국전쟁(중)』, 국방군사연구소, 1996, 394-395쪽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