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무지개 부대 동해안 파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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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872회 작성일 2010-04-0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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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지개 부대 동해안 파견대(주51)

제1군단에 배속되어 활동하던 제5유격대는 군단의 북진경로인 영월, 진부, 강릉, 양양으로 북상하면서 잔적들을 소탕하고 설악산으로 들어가 적의 근거지를 괴멸시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대원의 규모가 950명이었으나 대원 절반이 일제99식 소총으로 무장했을 만큼 장비는 취약했다.

1950년 11월초 대대장은 미리 수색대원을 설악산 지역으로 파견하여 적정을 파악한 후 부대원 가운데 김병호 중위, 오정길 상사 등 70명을 선발하여 양양을 출발했다. 설악산 방면의 화일리와 양지말을 각각 기습하여 적 10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때 현지 자위대원은 길안내를 지원했다.

육군본부 작전국 신경전과에서는 북한으로부터 피난 나온 무장대를 중심으로 동해안을 담당하는 을지제1병단과 서해안을 담당하는 을지 제2병단을 조직했으나, 곧 미군에게 인계했다. 제1병단의 경우 관련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육본에서 보다 쳬계적인 특수부대 혹은 유격대가 창설된 것은 1952년 초에 이르러서였다. 육본 작전교육국장 이용문 준장이 특수부대 창설을 계획하여 9172부대를 창설하였다. 이 부대의 주역은 무지개부대로 편성되어 서남지구와 제주도 빨치산 토벌작전에 참가하고 일부는 동해안지역에서 대북작전을 수행했다.

동해안 파견대의 책임자는 황포군관학교 출신의 양치호 대위였고, 보급관은 김이남 대위였다. 파견대는 4개 소대로 편성되어, 1개 소대규모는 10명 규모였다. 동해안 파견대는 당시 속초에 주둔하고 있는 커크랜드 부대와 갈등을 일으키자, 양양군 손양면 여운포리로 이동했다. 1955년 5월초 경기도 소사에서 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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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1) 조성훈,『한국전쟁의 유격전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3, 87-91쪽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