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대한청년단의 무장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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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782회 작성일 2010-04-07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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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청년단의 무장 시도(주44)

이대통령은 대한청년단 50만 명을 무장시키기로 결심하고 미국에 장비제공을 요구하였다. 대통령의 특명을 받은 장면 주미대사는 12월 6일 미 국무부를 방문하여 이 문제를 논의하였으나 국무부는 미국이 유엔군에 대한 장비개선도 부담하고 있어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무렵 국무총리로 임명되어 이임 인사차 백악관을 방문하게 된장면대사는 직접 트루먼 대통령에게 대한청년단 50만 명을 무장시켜줄 것을 제의하였다. 사실 이 무렵 유엔군의 추가지원을 획득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고, 미국 역시 추가 파견할 가용부대가 없어 유엔군의 전력보강이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국군의 확장이 유엔군의 전력증강을 위한 최선의 방안임이 미 국무부에 의해 고려되기도 하였다.

무기지원의 필요성과 정부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미 국방부와 합참본부는 이를 검토하게 되었다. 미합동전략기획위원회는 이 계획에 찬성하였다. 무기의 가용재고를 조사한 후 그 위원회는 7만5천 명~10만 명의 한국인을 특수부대로 조직하여 병참선을 경계시키고 적이 점령하고 있는 지역에서 게릴라로 운용토록 제안하였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은 기존부대의 임무수행상태가 너무나도 좋지않기 때문에 새로운 부대의 창설에는 이점이 없다고 반대하였다. 그리고 그는 대한청년단은 기존부대의 보충요원으로 운용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하였다.

결국 미국정부는 극동군사령관의 판단을 수용함으로써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던 대한청년단의 무장계획은 결실을 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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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4)『한국전쟁(중)』, 국방군사연구소, 1996, 336-337쪽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