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의용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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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764회 작성일 10-04-0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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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용군(주42)

1950년 7월 1일 북한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전시동원령을 공포하였는데, 그 내용은
1)전지역에 걸쳐 동원을 선포
2)동원대상은 1914년-1932년(18-36세) 사이의 전체공민
3) 동원령은 7월 1일부터 발효한다 등이었다. 이
에 따라 남한점령지역 내에서도 대규모 인력 및 물자동원이 실시되었다.

북한의 인력동원은 보충병 및 신설사단에 필요한 의용군, 보급품 수송을 위한 노무단, 그리고 점령지역의 치안을 담당할 치안여단에 필요한 인력, 이외에도 파괴된 시설, 도로, 철로, 교량 등의 복구를 위한 노무동원을 실시하였으며, 북한군을 위한 식량, 옷감, 연료 등의 물자동원을 실시하였다.

남한점령지역 내에서의 의용군 동원은 3단계로 나누어져서 실시되었다. 7월 1일~6일 사이에 실시된 제1단계에서는 감옥에서 풀려난 좌익계 정치범과 자칭 공산주의자 그리고 북한의 감언이설에 속아 자원한 지원병들이었다.그러나 제1단계에서 북한이 설정한 목표만큼 의용군의 지원숫자가 미치지 못했다. 이에 7월 10일경 북한은 보다 강제성을 띠게 되는 제2단계 징집을 실시하였다. 이 단계에서는 각 인민위원회, 기업체, 학교등에 징집대상 숫자를 할당하는 방법이었다. 이에 따라 징집해야 할 숫자를 할당받은 각 단체들은 호구조사를 실시하여 대상인원을 파한 후 가택수색을 실시하여 강제징집 하였다. 낙동강 전선에서의 전투가 치열해지고 북한군의 보충병이 절실해지 자 8월초부터 북한당국은 불법적이고 무자비한 제3단계 징집방법을 실시하였다. 이 단계에서는 좌익계 단체(민청, 노동동맹 등)의 회원들을 동원하여 거리의 요소에 배치시킨 후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검문하게 한 반면, 철저한 가택수색도 실시하게 하였다. 장애자가 아닌 17세~45세의 모든 남녀들은 현장에서 징집되었다.

의용군에 강제로 입대된 사람들은 학교 운동장 등에서 집체훈련과 화기작동법 그리고 공산주의 노래 등을 교육받았다. 초기 자원입대한 의용군들은 일부가 북한의 훈련소에서 교육을 받기 위해 북한으로 파견된 경우도 있으나, 그 수는 극소수에 불과하였고, 대부분의 의용군 들은 약 3일~7일간의 교육을 받은 후 전선으로 이동하였는데, 통상약 1천여 명으로 대대를 구성하여 이동하였다.

이동은 주로 야간에 도보행군으로 실시되었으며, 주간 동안에는 유엔항공기를 피해 숨어있었다. 이들은 모두 비무장이었으며 북한군 도망방지요원들이 항상 이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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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2) 서용선,「한국전쟁시 점령정책 연구」,『한국전쟁연구 : 점령정책, 노무운용, 동원』, 국방군사연구소, 1995, 40-42쪽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