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6․25 때 동해연안 조선인민군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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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274회 작성일 2010-04-0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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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때 동해연안 조선인민군 작전(주41)

제1경비여단은 제5보병사단 예하 제10보병연대, 포병대대 및 자주포 대대와 협동으로 동해연안의 도로 및 소로를 따라 진격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최근 임무는 원일전리, 동산리 지역을 점령하는 것이었다. 이후 양양 동남쪽의 482고지(원일전리 남방5㎞ 고적치), 향동, 지경리 선까지 진출하도록 되어 있었다. 여단의 임무는 퇴곡리, 동덕리 지역을 점령하는 것이었다. 선두부대들은 강릉 서북방 지역에서 육전대와 합류하도록 되어 있었다.

해군은 동해연안의 강릉남방지역에 육전대를 상륙시키며, 상륙한 육전대는 적의 지원병력이 남쪽으로부터 접근하는 것을 저지하고, 전선에서 공격하는 제1경비여단 부대들과 합동으로 강릉북방에서 적을 포위 섬멸하는 임무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여단을 2개 제대로 편성한다. 제1제대는 7개 보병대대로, 그리고 제2제 대대는 제5보병사단 예하 제10보병연대로 편성한다.

․ 제1,제2 및 제3보병대대는 귀둔리(한계령 남방9㎞), 공수전리, 내현리 선에서부터 남쪽으로 뻗어있는 도로 및 소로를 통하여 진격한다.
․ 제6보병대대는 (인제군) 원대리 선으로부터 갑둔리(인제 남쪽16㎞)로진격한다.

․ 제4, 제5보병대대는 하추리, 귀둔리 선에서부터 진동리 지역의 현리에서 하남리 방면의 내린천 계곡을 따라 진출하여 제6보병대대와 합류한다.

․ 여단의 제2제대인 제10연대는 동해연안을 따라 진격하여 제1,제2보병대대의 전과를 확대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1950년 6월 25일 새벽5시 40분경부터 적 토치카에 대한 사격을 실시한 후에 여단 예하부대들이 공격으로 전환하였다. 적은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이용하여 강력하게 저항하였다. 아침 10시 무렵 주공 방면(해안방면)에서 여단 예하부대들이 3㎞내지 5㎞를 진격하여 시변리를 점령하였다.

제4,5,6보병대대는 적의 완강한 저항을 극복하면서 느린 속도로 진격을 계속하여 아침 10시 무렵에는 1㎞ 내지 1.5㎞ 전진하였다. 오후6시 무렵 동해연안을 따라 진격하던 여단 예하부대들은 광진리, 향동 지역을 점령하였지만, 주문리 지역과 인접 고지의 적으로부터 조직적인 화력저항을 받았다.

6월 26일 아침부터 여단 제2제대가 동해연안에서 전투에 투입됨으로써 오전10시 무렵 동덕리에서의 적 저항이 제압되었고, 여단 예하부대들은 연곡천 남쪽천변으로 진출하였다.

여단은 6월 28일 새벽4시부터 강릉 공격을 재개, 저녁8시 무렵에강릉을 적으로부터 완전히 해방시켰다. 당시 제10보병연대는 상시동리를 점령한 후 육전대와 합류하였다. 6월 29일 제2보병사단 제10연대는 관할지역을 여단에 인계하고 자기 사단으로 복귀하였다. 1950년 7월 2일에는 삼척을 점령하였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전 전선에걸쳐 공격 구성군에 부여되었던 제1단계 임무는 5일을 지체하면서

1950년 7월 2일부터 4일 사이에 완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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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1)『소련군사고문단장 라주바예프의 6․25전쟁보고서』,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1, 174- 177쪽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