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6․25 발발 직전 남한의 군 작전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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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448회 작성일 2010-04-07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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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발발 직전 남한의 군 작전 상황(주38)

5월-6월의 위기설이 파다한 가운데 1950년 4월 10일 육군총참모장에 재기용된 채병덕 소장은 4월에서 6월에 북한군의 동향과 국내정세를 고려하여 세 번에 걸친 경계 강화조치를 취하였다. 우선 4월 21일에 인민군과 게릴라들이 노동절을 전후하여 남침과 폭동을 기도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각 사단으로 하여금 경찰과 긴밀한 협조를 하고 관할지역 내의 순찰을 철저히 실시하도록 하였다. 다음으로는 5월 8일에 적이 5월 30일 선거의 혼란기를 틈타 침략과 폭동을 기도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이를 전후하여 각 부대로 하여금 비상소집 및 출동에 만전을 기하고 경계를 강화하도록 하였다. 그 다음은 북한의 6월 7일남북한 선거제의, 6월 10일 요인교환 제의 등 강화되는 평화공세가 남침을 호도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6월 11일부터 군에 비상경계명령을 하달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징후를 포착하지 못하자 6월 23일 24시부로 비상경계령을 해제하였다.

더구나 한국군 총참모장 채병덕은 6월 10일 고위장교들의 대규모 인사이동을 단행하였다. 그 결과 8개 사단장 중 5명이 경질되었으며, 전방에 배치된 4개 사단 중 3개 사단장이 교체되었다. 새로 임명된 사단장들은 그 에하부대의 책임지역 내 지형과 적정 등의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간 45일이나 지속되던 오랫동안의 경계태세가 해제되자 다음날인 24일(토요일)에는 부대가 외출외박을 실시했고, 또 농번기에 즈음한 휴가도 실시하였다. 이리하여 ⅓에 해당하는 병력이 주말에 제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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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8) 양영조,『남북한 군사정책과 한국전쟁 1945-1950』, 한국학술정보, 2007, 22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