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북한의 창군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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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871회 작성일 2010-04-0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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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창군과정(주33)

소군정은 45년 10월 21일 무장단체 해산령을 발표하고 새로이 보안대를 조직하였다. 보안대는 1945년 11월에 소련군정을 추종하여 공산주의 사상이 투철한 자 중에서 선발된 2천 명 규모로 진남포에서 창설되었으며 1946년 초까지는 각 도에도 보안대를 설치하여 이들로 하여금 치안과 시설경비를 담당하게 하였다.

1946년 1월에 본부를 평양에 둔 철도보안대를 창설하였다. 그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1946년 7월에 북조선 철도경비사령부로 개편되었다. 철도경비대는 13개 중대로 편성되었으며 철도경비를 담당하면서 정규군 편성에 대비하였다.

1946년 2월 8일 진남포 도학리에 군간부와 정치간부의 양성을 목적으로 한 평양학원을 설치하였다. 이 학원의 교육기간은 4개월의 단기과정부터 시작하여 1946년 6월 처음으로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이후 15개월 과정을 신설하여 전쟁 직전까지 모두 2500명이 배출되었다.

1946년 7월 평남 강서군에 군간부를 양성하기 위한 중앙보안간부학교를 설치하였다. 이들은 후일 인민군의 소대장, 중대장, 교관요원 등이 되었다. 여러 기관을 통합하여 지휘체계를 일원화할 필요에 따라 1946년 8월 15일 평양에 군지휘부인 보안간부훈련대대부를 설치하였다. 철도경비대의 13개 중대를 기간으로 하여 3개 대대를 편성하고 훈련소를 3개소로 통합하였다.

대부분의 병력은 18세 이상 25세까지의 청년으로 모병하였으나 기피현상이 심해지자 강제징집을 시행하여 민청대원과 장정을 집단적으로 입소시켰다. 장비는 초기에는 일제38식소총으로 무장하였으나 소련제소총과 탄약을 확보하고 소련군 장교를 고문관으로 두어 조직적인 체계로 급속히 성장하였다.

1947년 5월에 이르러 보안간부훈련대대부를 인민집단군(최용건 사령관)으로 재편, 2개 사단+제3독립혼성여단으로 편성하였다. 사단은10,400명이고, 여단은 2,400명이었다.

1948년 2월 8일 정규군 창설선언과 함께 조선인민군으로 개편하고 인민군 총사령부를 설치하였다. 공산정권 수립 7개월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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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3) 양영조,『남북한 군사정책과 한국전쟁 1945-1950』, 한국학술정보, 2007, 345-348쪽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