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양양돌입사건(제2차 고산봉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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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004회 작성일 2010-04-0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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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양돌입사건(제2차 고산봉 전투)(주31)

호림부대가 양양군에서 대북침투를 단행한 직후인 7월초 양양의 한국군이 대북공격을 단행했다. 이 전투의 명칭은 양양군 고산봉전투(북한)(주32) 혹은 양양돌입사건(한국)으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남북한 모두 7월초 양양에서 한국군의 대북공격이 이루어졌음을 인정했다.

먼저 한국측 자료로 이 전투를 구성해보면 10연대장 송요찬이 양양의 북한유격대 훈련소를 파괴하기 위해 상부와는 무관하게 제3대대에게 구두 공격명령을 내렸고, 7월 4일 미명에 제1대대의 3개 중대가 공격을 개시했다. 이들은 처음 보급된 M1소총으로 무장하고 양양을 목표로 산간소로를 이용해 진격했다. 이들은 남대천 대안의 80고지를 점령했으나 북한군의 반격으로 1개 중대가 피해를 입었고 송요찬은 문책 해임되었다.

8사단장이던 이형근은 자신의 부재 시 제10연대장 송요찬 중령이 침투한 적을 추격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북한군에 포위되었다고 회고했다. 이형근은 송요찬의 행동이 정당한 점도 있었으나 지휘계통을 무시해 해임했지만, 군법회의에는 회부하지 않았다고 썼다.

북한측 주장도 이와 비슷한데, 7월초 8사단10연대 제1․2․3대대와 계림특무부대가 38선 이북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고산봉 점령 및 양양군 공격명령을 받았다. 10연대는 7월 3일 양양군 서면 영덕리 공수전리를 공격했고, 7월 5일에는 같은 지점과 영덕리 825고지를, 7월 6일에는 서면 중암리와 고산봉을 전면공격했다. 북한은 7월 8일 공수전리, 고산봉에 침입한 남한군을 격퇴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한 선전매체는 7월 6일부터 한국군이 만여 발의 포를 쏜 뒤 3개 대대가 진격해왔지만, 고산봉을 지키던 2개 소대병력에게 격퇴되었다고 선전했다. 고산봉 전투에 참가했던 병사에게는 국기훈장3급이 수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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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1) 정병준,『한국전쟁 -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 돌베게, 2006, 375-376쪽 요약.

(주32) 필자(이한길)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현지 양양지역 주민들은 이를 ‘기사문리 돌발 사건’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