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인민유격대의 남파와 빨치산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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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1,248회 작성일 10-04-07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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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민유격대의 남파와 빨치산(주13) 활동(주14)

북한은 소위 ‘민주기지론’(주15)의 차원에서 남한의 적화를 군사력 증강과 병행하여 유격대를 계획적으로 양성 남파하고 있었다.(주16) 북한은 소련군이 진주한 직후부터 일정기간 동안 월북자들을 공작요원으로 훈련․남파시켰다.

그러한 가운데 1946년 평양학원이 설립되자 대남반을 설치하고 월북한 남로당원을 공산주의 정치교육과 대남공작요원으로 훈련하여 남한에 침투시켰다. 이들은 주로 좌파세력 또는 남로당원과 연계하여 대남공작을 전개하였는데 일부는 정부기관과 군 내부에까지 침투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지하활동도 병행하였으나 유격요원으로 양성된 것은 아니었다.

1948년 1월에 강동정치학원이 설치되고 난 후 인민유격대라 불린 유격대원들이 양성되었다. 강동정치학원에서 양성된 유격대원들은 남파되기 직전 양양 인민유격대 훈련소에서 재교육을 받았는데 전쟁 발발 전까지 양성된 유격대원은 약 3천 명(주17)이었다. 북한은 강동정치학원 폐쇄 직전인 1949년 4월 회령에 제군관학교를 설치하여 남침 시 투입할 비정규전부대(766부대)를 양성하였다.

인민유격대는 여순사건 발생으로 토벌부대가 호남 및 경남지역에집중되어 후방경비가 허술해지고 남한의 사회가 혼란해지자 본격적으로 침투하기 시작하였다. 이 유격대는 제1차로 약180명이 1948년 11월 14일 양양 오대산지구로 침투하였다. 이들은 산맥을 따라 태기산부근까지 남하하였으나 한국군 토벌대에 의해 대부분 소탕되고 잔여병력은 충북제천방향으로 도주하였다. 북한은 제1차 침투에서 실패하자 그 원인을 분석한 후 1949년 6월 1일 약400명의 유격대를 재차 오대산으로 침투시켰다. 그러나 1차 침투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섬멸되었다. 같은 해 7월 6일 세 번째로 약200명의 유격대가 또 한 번 오대산까지 침투하였으나 토벌대에 쫓겨 사살되고 나머지 30여 명만이 주봉산 방면으로 도주하였다.

북한은 3차에 걸친 침투가 모두 실패하자 4차로 유격부대 중 정예인 김달삼부대(제주) 약300명을 1949년 8월 4일 일월산으로 침투시켰다가 더 이상 진출할 수 없게 되자 영일군 지경리로 재침투시켰다. 이들은 경북 보현산에 거점을 구축한 후 동해연단을 편성하여 본격적인 유격전을 전개하다가 토벌되었다. 이렇게 계속 비정규군의 침투작전이 실패하게 되자 7차로 1949년 8월 17일 당시 강동정치학원 원장인 이호제가 직접 지휘하는 인민유격대 약360명을 태백산으로 남파시켰다. 이들 병력의 대부분은 토벌되었으나 100여 명이 김달삼부대와 합 류하여 경북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이후에도 1949년 9월 28일 약50명의 유격대를 양양군 면옥치리로 침투시켰으나 한국군에 의해 저지되어 북상도주하였으며, 같은 해 11월 6일에는 약 100명의 유격대가 영일군 지경리로 해상침투하여 보현산의 김달삼부대와 합류하였다. 이후 유격대의 침투는 잠시 중단되었다가 10차로 1950년 3월 28일 양양․인제․양구에서 대기 중이던 김상호․

김무현부대 약700명이 오대산과 방대산으로 침투하였다. 이들은 강력한 화력을 지닌 정예부대였으나 역시 토벌작전으로 소탕되었다.남침 시 후방에서의 대대적인 교란작전 수행을 목표로 한 북한유격대는 1948년 11월부터 1950년 3월까지 모두 10회에 걸쳐 2400명 가량이 침투하였으나 한국군과 경찰의 토벌작전에 의해 2천여 명이 사살 또는 생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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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중국은 빨치산의 개념이 없다. 그러나 북한은 빨치산과 유격대를 동일용어로 사용 하고 있다.
          8․15 이후에 등장한 빨치산의 원조는 러시아 볼세비키 빨치산이다. 이기봉,『빨치산의 진실』, 도서출판 다나, 1992, 21쪽.

(주14) 양영조,『남북한 군사정책과 한국전쟁 1945-1950』, 한국학술정보, 2007, 166-169쪽 요약.

(주15) 민주기지론의 내용에 대해서는〈최용달〉항목 참조.

(주16) 인민유격대가 남한으로 남파되기 직전 마지막으로 최종 훈련을 한 곳이 지금 양양군 향교가 있는 곳이었다.
          이 곳이 인민유격대(즉 빨치산)의 훈련장소였다.

(주17) 남파된 유격대 숫자에 대해서는 책마다 차이가 있으니 이를 감안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