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38표지석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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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7,595회 작성일 2010-04-07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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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표지석의 문제(주3)

한편 강릉지역 명지리, 서림리, 대치리(주4) 등의 마을에는 현재 38도선 표지가 38도선 남쪽 600야드지점에 설치되어 있었다. 따라서 38도선 표지지점과 38도선 사이의 농지의 추수가 문제가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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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리 38표지석


소군이 북한경비대와 함께 이 지역으로 넘어와 농부를 납치하고 곡식을 수확해 간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농부들에게 미군 초소의 상황을 심문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 지역을 정찰한 미제7사단 기병정찰부대는 즉시 동해안지역의 38도선을 재설정할 것과 38도선 표지를 600야드 북상시킬 것을 사단장에게 건의하였다. 그러나38도선 분계선 설정의 혼선은 소련군의 비협조로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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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양영조,『남북한 군사정책과 한국전쟁 1945-1950』, 한국학술정보, 2007, 370쪽.

(주4) 이들 마을은 오늘날 양양군 현북면과 서면 지역에 속한다. 현북면과 서면 지역의 일 부는 38선이 그어질 무렵 이남에 속해 한때 행정구역이 강릉에 속했던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