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38표지석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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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6,701회 작성일 10-04-07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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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표지석의 문제(주3)

한편 강릉지역 명지리, 서림리, 대치리(주4) 등의 마을에는 현재 38도선 표지가 38도선 남쪽 600야드지점에 설치되어 있었다. 따라서 38도선 표지지점과 38도선 사이의 농지의 추수가 문제가 되고 있었다.

24.jpg
대치리 38표지석


소군이 북한경비대와 함께 이 지역으로 넘어와 농부를 납치하고 곡식을 수확해 간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농부들에게 미군 초소의 상황을 심문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 지역을 정찰한 미제7사단 기병정찰부대는 즉시 동해안지역의 38도선을 재설정할 것과 38도선 표지를 600야드 북상시킬 것을 사단장에게 건의하였다. 그러나38도선 분계선 설정의 혼선은 소련군의 비협조로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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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양영조,『남북한 군사정책과 한국전쟁 1945-1950』, 한국학술정보, 2007, 370쪽.

(주4) 이들 마을은 오늘날 양양군 현북면과 서면 지역에 속한다. 현북면과 서면 지역의 일 부는 38선이 그어질 무렵 이남에 속해 한때 행정구역이 강릉에 속했던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