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양양의 학도호국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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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594회 작성일 2010-04-0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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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의 학도호국단

국군이 양양을 수복하고 난 다음 1951년 양양의 학생들 중에서 뜻있는 학생들을 선발하여 학도호국단을 창설했다. 당시 단장은 단국대 의대를 다녔던 이창우(당시 20대 후반)였다. 감찰부장 이상훈(강선리출신), 총무부장 조상학(이북 출신), 선전부장 김태병(통천 출신) 등이 보직을 맡았고, 그리고 양양군 관내 남․녀 초급중 학생들이 주요 회원이었다.

학도호국단을 조직하였지만, 처음엔 허울뿐이고 하는 일이 많지 않았다. 어느 날 민정관이 부르더니 하는 일 없이 놀지 말고 일선위문공연이나 하라고 하였다. 당시 중동부전선에 3사단, 동부전선에 5사단이있었을 적이었다.

양양극장에서 간판을 그리던 이가 예전 청진에 있을 적에 심청전 연극에 사공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위문공연을하기 위해 양양극장에서 간판그림을 그리던 이를 초빙하여 와 연극연습을 하였다. 여학생들은 L5 비행기를 타고 상공에서 대공방송도하였다. 이렇게 5개월 정도 활동을 하였다.

백담사에 공비가 출몰하였다. 백골부대가 이들을 토벌하러 갔다가되려 몰살을 당하다시피 하였다. 국군에서는 부족한 인원을 강현면 학도호국단 단원들로 채우기 시작했다. 군사훈련도 하였는데, 막상 양양읍에 모인 다음에는 모두 해산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