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벌꿀이 뭐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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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613회 작성일 2010-04-06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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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꿀이 뭐기에

1950년 북암리의 주민들 중 태반은 다른 마을로 이주하였다. 마상철도 일가붙이가 많이 이주해와 있는 기리로 이주하였다. 38선 접경에서 남북한 간에 충돌사건이 발생하였기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벌어지고 전황은 처음에 인민군에게 유리한 듯했으나 이내 곧 아군이 양양을 수복하기에 이르렀다. 사건은 이때 벌어졌다. 아군이 양양을 수복하였으나 인민군 패잔병들이 밀고 올라올 때였다. 마상철은 고향 북암리에 두고 온 꿀벌 통이 생각이 났다. 꿀을 채취할 때가 된 것이었다. 시황은 어두웠지만, 그래도 설마 하면서 미상철은 북암리로 아내와 함께 올라갔다. 다행히 올라가 보니 아직 피난을 가지 않고 살고 있는 토박이 주민들도 몇 집 있었다. 이웃집들을 위안삼아 며칠 묵는 중에 하루는 누군가 방문을 두들기는 것이었다. 나가보니 인민군 패잔병이었다.

“아바이 동무, 먹을 것 좀 있소?”

총이 무서워 마상철은 급히 감자 몇 개를 줄 수밖에 없었다.

“이거 밖에 없소?”

“정말로 이거밖에 없습네다.”

사실 정말로 먹을 게 궁하던 시절이었다. 감자라도 있어 연명을 하면 다행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인민군 패잔병들은 사실로 여기지 않는 눈치였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하는 말이

“집 뒤에 벌꿀 통이 있던데 그것 좀 따주오.”

하는 것이다. 마상철은

“안 됩네다. 그거라도 있어야 우리 가족들이 겨울을 납네다. 그거 없으면 우리 가족은 겨울에 굶어 죽습네다.”

그러자 인민군 패잔병은 마상철은 끌고 나가는 것이었다. 조금 있다가 보니 총소리가 났다. 마상철을 끌고 간 인민군 패잔병이 마을 어귀를 돌아나가면서 마상철에게 총질을 한 것이었다. 다행히 마상철은 총알을 비껴 맞았다. 마상철은 데굴데굴 구르다시피 하여 현장을 빠져나와 급히 집으로 달려왔다. 아내가 보니 마상철의 어깨에서 피가 뭉클뭉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내는 급히 지혈을 하고 이웃집에 도움을 요청하고는 상평리에 주둔하고 있는 국군 의무대를 찾아갔다.

북암리에서 상평리까지는 산협으로 4㎞나 되었다. 한밤중이었지만, 이것저것 가릴 시간이 없었다. 급히 찾아가 겨우 치료를 마치고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이후 마상철은 북암리로 다시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북암리의 주민들도 더 이상 북암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 길로 마을은 페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