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말라리아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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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570회 작성일 2010-04-06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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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라리아 때문에

아군이 양양군을 수복하면서 인공시절 주요 보직을 맡았던 기리의 간부(인민위원장, 세포위원장, 농민위원장, 여맹위원장 등)를 색출하였는데, 당시 마을의 주요 간부들은 모두 이북으로 피난을 들어가고 난 다음이라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주요 마을의 간부들은 찾을 길이 없었다. 그 외 설령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하고 남아 있었다 할지라도 사람의 탈을 쓰고는 손가락질(주103) 할 수는 없었다. 또 손가락질을 할 만큼 큰 잘못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1950년의 가을은 저물어 가고 있었는데, 중공군의 공세로 인하여 아군이 후퇴를 하고 다시 아군이 2차 수복을 하는 과정에 문제가 벌어졌다. 당시 마을의 세포위원장이 미처 피난을 가지 않고 마을에 남아 있었다. 가지 못한 이유는 당시 유행했던 말라리아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병중이라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것이었는데, 예외 없이 이 집에도 아군의 수색대가 들이닥쳤다. 아군이 수색을 하는 중에 땅바닥을 두드리니 공명현상이 나타났다. 아군은 수상하다 싶어 땅밑을 파보았더니, 거기에서 여러 문서들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 문서들은 노동당과 주고받은 문서들이었다. 그렇게 하여 당시 마을의 세포위원장은 아군에게 붙잡혀 가 총살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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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3) 같은 마을에 사는 사상이 달랐던 사람들을 직접 호명하기보다는 손가락으로 저 집 혹은 이 집 등으로 가리켰기에, 이를 ‘손가락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