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1949 수리 동사 습격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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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616회 작성일 2010-04-0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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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9 수리 동사 습격사건

수리는 다른 마을보다도 월남한 청년들이 많았다. 이들은 모두 주문진 서북청년이나 강릉서북청년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계림부대에도 들어가 활동하였다. 계림부대는 서북청년단 소속중에서 특별히 무장훈련을 받은 이들을 지칭한다. 호림부대처럼 일종의 유격대 조직이었다.

1949년 가을 수리의 동사무소에 노동당 인민위원회 위원장이 온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주문진의 계림부대에서는 이들을 습격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리하여 K를 습격대 대장으로 하고 수리 출신 청년들 위주로 구성된 특공대가 조직되었다.

수리 동사무소에 가깝게 접근을 한 다음 안을 엿들으니 누군가 와 있는 소리가 났다. 특공대는 위원장을 생포할 요량으로 문을 박차고 들어가며 “손들어”라고 했다. 그런데 누가 곧바로 권총을 빼들더니 총질을 하는 것이엇다. 그때 습격대 대장 K가 흉부에 관통상을 입었다.

대원들 중 힘이 장사인 사람 K2가 있었다. K2는 급히 K를 등에 업고 마을을 빠져 나왔다. 습격대 대장 K를 살리는 게 급선무였다. K는 이후 후방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아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수리동사 습격사건은 이렇게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