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김구 이승만 타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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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695회 작성일 2010-04-0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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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구 이승만 타도하자

인민학교(남한의 초등학교에 해당됨) 시절에는 학생들도 사상을 구분하여 계급장처럼 빨간 줄, 파란 줄을 그려 붙였다. 이 줄의 개수도 1개 반, 2개, 2개 반, 3개 등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인민학교 학생들은 학교에 갈 때나 학교에서 돌아올 때나 단체행동을 해야 했다. 이를 통학반이라 하였고, 상급반 학생이 통학반 반장을하였다. 통학반 반장의 구령에 맞추어 등교와 하교를 하였는데, 길을 가다가 낯선 사람이 지나가면 신고를 하여야 했다. 그런데 누구는 신고를 하였는데, 누구는 신고를 하지 않았다 하면 신고하지 않은 학생은 자아비판을 당하였다. 이런 일이 3번 발생하면 그 부모도 자아비판을 당하였다.

통학반의 일과는 하교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저녁이 되면 모두 나가서 마을을 한 바퀴 돌아야 했다. 골짜기 너머 외따로 있는 집일지라도 빠뜨리면 안 되었다. 이들은 그냥 도는 것이 아니었다. 줄을 맞추어 다니면서 구호를 외쳤다. “김구 이승만 타도하자.” 통학반 학생들 중 맨 앞에 선 이가 반장이다. 반장이 이렇게 구호를 외치면 나머지 학생들도 복창하여야 했다. 가장 큰 원수는 이승만이 아니라 김구였다. 사람들은 이승만은 잘 몰라도 김구는 잘 알았다. 이북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큰 인물은 남한의 이승만 대통령이 아니라 김구 선생이었던 것이다.

아침에 모여 등교를 할 적에 ‘호무랑’이라 하여 오늘날의 야구와 같은 경기도 하였고, 하교 할 적에는 씨름도 하였다. 씨름을 하다가 힘이 부치면 “고상”이라고 소리친다. 이는 졌다는 뜻이다. 이를 ‘고상 받기’라 불렀다.

5월 1일은 노동절이다. 이북에서 가장 큰 명절은 공산당 창건기념일, 8․15해방기념일 그리고 노동절이다. 강현면에는 3개 인민학교가있었다. 강현인민학교, 회룡인민학교, 적은인민학교였다. 노동절이면 강현면의 3개 인민학교가 강현인민학교에 모두 모여 경축행사를 했다. 행사 후에는 학교끼리 집단패싸움이 붙었다. 이때 자기네 학교 학생이 맞고 오면 자아비판을 당하였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이겨야 했다. 이기기 위하여 모자에 함석을 넣어 챙을 만들기도 하였다.

또 우차의 가락지를 구해 칼날처럼 갈아 붕대로 칭칭 감아 갖고 다녔다. 그러다가 자기보다 힘 센 아이를 만나면 이것을 휘둘렀다. 이런 모든 것들은 전쟁준비에 여념이 없던 인공 시대 교육의 한 단면이었다. 전투성을 고취시키기 위한 체력단련 겸 정신무장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