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금풍리 돌발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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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638회 작성일 2010-04-06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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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풍리 돌발사건

김남홍은 금풍리 사람이었고 이계화는 서문리 사람이었다. 38선이 그어지자 둘은 월남을 하여 서북청년 영동지구 본부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이후 호림부대에 들어가 5대대 대원으로 1949년 7월초 이북으로 잠입했다. 당시 김남홍은 21살-22살이었고, 이계화는 20살 정도였다.

호림부대가 설악산을 장악하고 아래 마을로 정찰을 내보낼 때 이 둘은 인근 마을 출신이라 정찰병으로 투입되었다. 사교리의 아는 집으로 숨어들었다. 김남홍의 친척이 되는 집이었다. 김남홍은 친척에게 부탁하였다. 양양군 소비조합에 가서 물건을 사다달라면서 인민화폐를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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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이전의 인민폐


친척은 인민화폐를 집어들고 군소비조합으로 가서 동향도 파악하면서 물건을 구입하였다. 그런데 그만 보안대 요원에게 발각이 되었다. 왜냐하면 당시 사용했던 인민화폐가 위조지폐였기 때문이었다. 보안대 요원은 친척을 붙잡아가 고문을 하였다. 그 결과 간첩이 양양군으로 숨어들은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보안대를 보내어 김남홍이 숨어 있는 곳을 습격하였다. 김남홍은 엉겹결에 다락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밖에서 날아드는 총알은 다락이라고 용서하지 않았다. 거기에 서 한 명은 사망하고, 한 명은 중상을 입었다. 곧이어 들것에 실려 한 명은 후송되었지만 기식이 엄엄하였다. 누가 사망이고 중상인지 구분은 할 수 없지만, 중상을 입은 이도 곧 사망하였다.

이 사건은 엉뚱하게 비화되어 인근 민주당 당원 검거선풍을 유발하였다. 당시 김남홍의 친척이 민주당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붙들려 간 사람은 김찬○, 김남○ 등이었는데 한 달 후에 석방되었다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