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주문진의 서북청년단

페이지 정보

조회 5,556회 작성일 2010-04-06 19:19

본문

 주문진의 서북청년단

서북청년단은 이북에서 넘어온 사람들의 모임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서북이란, 관서지방과 관동지방을 아우르는 용어인데, 편의상 관서는 평안도, 황해도 일대, 관동은 북강원도, 함경도 일대를 지칭한다.

영동지구의 본부는 주문진에 있었다. 처음에 본부가 위치한 곳은 중앙시장통이었는데, 동아극장 맞은편 4거리에 있던 2층건물이었다. 이 건물 2층 전체를 사용하였는데 약 30평 정도였다.

서북청년단의 단원 중 가정이 있는 사람들은 생업에 종사하다가 특별한 일이 있으면 참가를 하였고, K처럼 직장이 없고 가정도 없는 젊은이들은 합숙소가 있어 여기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K가 있던 합숙소의 인원은 15명 정도였고 위치는 주영초교가 있는 5거리 근처였다.

서북청년단의 단원들은 합숙소에 있는 단원보다는 가정이 있는 단원이 더 많았다. 합숙소에는 밥을 해주는 아주머니, 즉 식모가 있어 아침과 저녁을 챙겨주었다. 점심은 현지에서 해결했다. 반찬은 김치와 명태 말린 것이 주로 나왔고, 밥은 잡곡이었다. 이런 일들은 서북청년단 산하 사업부장이 있어 전담하였다.

옷은 제각기 알아서 장만해 입었다. 서북청년을 의미하는 표지는 없었으나 완장은 있었다. 완장은 파란 바탕에 흰색 한자글씨로 西北이라 써놓은 것이었다. 평상시에는 허리춤에 차고 다니다가 사건이 벌어지면 팔뚝에 차고 출동을 했다.

아침을 먹으면 청년들은 주문진 중앙통에 있는 서북청년 영동지구 본부로 출근을 했다. 조회를 한 후 각기 그 날 할 일을 명 받아 각자 근무지로 출근을 했다. 하는 일은 수상한 사람을 찾는 일, 38선 근처 마을로 순찰을 나가는 일 등이었는데, 관할구역은 동으로는 태백산맥 동쪽, 북으로는 38선 접경지, 남으로는 후진까지였다.

좌익들은 경찰보다도 서북청년을 더 무서워하였다. 서북청년은 좌익을 잡아오면 정말로 모질게 고문을 하였다. 그래서 서북청년에 검거된 좌익들은 붙잡혀 오다가 근처에 있던 지서로 뛰어들어가곤 하였다. 두들겨 맞는 것이 서북청년들보다는 지서의 순경에게 두들겨 맞는 것이 훨씬 약하다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