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공 차는 켈로 한림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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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626회 작성일 2010-04-06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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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 차는 켈로 한림부대

윤회장은 19살이 되던 해, 1952년에 아버지를 따라 동산리로 왔다.

아버지가 고향 땅에서 말년을 보내고 싶다면서 동산리로 이사를 왔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줄곧 동산리에 눌러 앉아 터주대감이 되었다.

6․25사변이 나자 윤상률 씨는 양양에 내려와 켈로부대 중 산하부대인 켈로한림부대를 만드는데 관여했다. 그 분 덕분으로 윤회장도 켈로한림부대에 들어갔었다. 당시 윤회장은 축구를 잘하여 주말마다 켈로부대 내 다른 부대와 축구시합을 하곤 하였다. 물론 윤회장은 주전선수로 뛰었다.

켈로부대는 북한의 후방지역에 투입될 목적으로 조직된 특수부대였다. 그러나 정규군이라고 볼 수는 없는 부대여서 나름대로 자유스러운 점이 있었다. 켈로부대의 보급은 미군이 전담하였다. 미군의 군복과 비슷한 군복을 입고 나름대로 특수부대라는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적지침투훈련을 마치면 마지막으로 낙하산훈련을 받는다. 주요 훈련장소는 지금의 설악콘도가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 떨어지는 낙하산훈련을 무사히 마치면 곧바로 이북에 투하되는데, 윤회장은 이북에투입되기 직전에 켈로한림부대가 해산되는 바람에 실제 참전을 하지는 못했다.

켈로한림부대가 해산되는 과정에 정규군으로 갈 사람은 정규군으로 보내주었다. 이때 대부분 계급은 선임하사, 하사, 병장 등을 달고 갔었는데, 켈로한림부대 출신들은 대체로 공병대에 배속을 받았다. 윤회장은 당시 나이가 어려 아직 군대에 갈 나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정규군으로 편성될 때 도망쳐 나왔다가 이듬해 3월 논산에 입소를 하였다.

윤회장이 논산에서 훈련을 받던 중에 휴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