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포매리에 좌익이 많았던 이유

페이지 정보

조회 4,198회 작성일 2010-04-06 20:09

본문

 포매리에 좌익이 많았던 이유

현남면에서 유독 포매리에 좌익이 많았다. 6․25가 터지기 전부터 이 지역은 좌익의 온상처럼 여겨졌는데, 그 이유를 살펴보면 조두원으로부터 기인한다. 조두원은 일제강점기 때 소련으로 유학을 갔다. 일설에는 모스크바대학이라고도 하고 그냥 어떤 공산대학이라고도 한다. 어느 대학에 유학을 하였던지 간에 주요한 것은 사회주의 사상을 배워온 것이었다.

조두원이 돌아온 다음 조씨 집안사람들은 사회주의 이념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씨 집안이라고 하여 모두가 사회주의 이념을 공부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심지어 한 집안 형제끼리도 좌익, 우익으로 갈린 곳이 포매리였다. 포매리는 농촌이었다. 지주가 있고 소작농이 있었다. 소작농은 지주의 눈치를 봐야했다. 지주가 하자면 하고 가자면 가야 했다. 이들도 지주가 좌익이면 덩달아 좌익이 되어야했다. 죄가 있다면 가난한 게 죄였을 따름이었다.

조두원이 살았던 집은 근래에 동해고속도 공사를 하면서 헐리게 되었다. 이제 포매리에서 좌익의 흔적은 찾아볼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