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인민위원회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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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731회 작성일 2010-04-0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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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민위원회 대회

6․25가 터지고 난 뒤 인민군이 남침하면서 각 읍면마다 인민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최현규는 1950년경 8월에 인구리에서 열렸던 현남면 인민위원회를 구경 간 적이 있었다.

최현규의 삼촌이었던 최용철은 호국군 중대장으로 근무했기에 6․25가 터지자 남쪽으로 피신을 한 상태였지만, 다른 가족들은 떠나지 않고 고향에 살고 있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불안한 것은 말할 수가 없었다. 지주이고 가족 중에 최용철과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현남면에서 열리는 인민위원회에서 어떤 논의가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최현규는 삼촌(최용철이 아닌 다른 삼촌)과 같이 나름대로는 얼굴을 가린다고 하여 맷고재를 쓰고 찾아가 보았다.

6․25가 터지기 전에 장수호라는 분이 좌익활동을 하다가 경찰에 잡혀 죽은 적이 있었다. 그 아내 되는 사람은 촌사람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연단에 나와 하는 연설이 놀랄 만큼 세련되어 있었다.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이 우익에 동조하는 주민들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돌아가는것이었다. 이 곳에 있다가는 몽둥이찜질이라도 당할 분위기였다. 그래서 슬그머니 아는 사람들 몇몇이 대회장을 빠져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대회가 끝날 무렵에 미처 떠나지 못하고 있던 우익에 동조했던 이들이 몽둥이찜질을 당했다는 말을 들었다.

최현규는 일단 도망을 쳤지만 밤이 두려웠다. 밤에 우익의 집들을 습격하지나 않는가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래서 집에 들어가지 않고 마을이 보이는 산에 올라가 정황을 살폈다. 밤이 되자 견불리, 포매리의 좌익 사람들이 횃불을 해 들고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더니 짐작대로 우익의 집들을 습격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후 최현규는 낮에는 집에 있다가도 밤만 되면 인근 산 속으로 올라가 새우잠을 자곤 하였다. 당시 최현규는 입암리에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