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의용군 탈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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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177회 작성일 2010-04-0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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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용군 탈출기

6․25 때 20-30대였던 사람들은 누구나 의용군으로 붙잡혀 가지는 않나 걱정을 하였고 또 실제로도 의용군으로 붙잡혀 갔던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견불리의 조철행도 이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조철행이 처음 의용군으로 붙잡혀 갔던 곳은 원산 아래에 있는 자동면이라는 곳이었다. 이 곳에서 두어 달을 있으면서 훈련을 받았는데, 훈련이 끝나고 호명을 하더니 일행을 두 패로 나누는 것이었다.

신체 건장한 이들은 의용군으로 편성하고 나머지 나이도 많고 허약한 이들은 짐꾼으로 편성을 하는 것이었다. 조철행은 나이도 젊은이들과 나이든 이들 중간이고 또 눈치껏 활동을 하여 군인이 아닌 노무자 팀으로 편성될 수 있었다.

자동면에서 훈련을 받은 다음 고성군을 거쳐 인제군으로 들어가 노역을 하였다. 고성군을 지나면서 보니 여성들도 대창을 가지고 보초를 세워놓은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인제에 도착한 것은 8월 중순쯤이었다. 장소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북면 쪽이었다.

당시 같이 간 사람들 중에는 고향 사람이 10여 명이 있었다. 이들과 같이 활동을 하였는데, 조철행이 가장 나이가 어렸다. 하는 일은 그곳 사람들이 목도를 해놓은 나무를 엮어 떼를 만들어 물줄기를 이용하여 서울 쪽으로 내려보내는 일이었다.

이후 인제군 남면으로 이동을 했다. 잠은 창고에서 잤는데 시멘트 바닥이었다. 그 위에 까는 것도 없이 그냥 자는데 8월이 아니었으면 큰 병을 얻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밥은 밀을 섞은 밥이었는데, 아무리 꼭꼭 씹어 먹어도 제대로 소화가 되지 않고 그대로 배설이 되는것이었다. 그래도 국은 먹을 만했다. 감자를 썰어 넣고 고등어조각도들어 있었다. 일행은 관리자에게 요구를 했다. 이런 상태에서는 일을할 수가 없다. 관리자는 언제까지 해결해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튿날 약속시간이 되었는데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노무자400여 명은 집단행동을 하기로 하고 양구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냇물을 하나 건넜는데 그 곳에 자위대원 2명이 길을 막고 있었다.

“뭔 사람들이냐?”

“의용군 갔다가 나이가 많아 돌아가는 길이다.”

“당신들 말 믿을 수 없다. 확인해보고 보내주겠다.”

그래서 도로 냇물을 건너 학교 근처로 이동했다. 그 곳에서 나무 밑 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말로 하루 종일 한 끼도 먹지 못하고 굶으면서 기다렸더니 저녁이 되어 인근 민간인 집들로 분산배치를 해주는 것이었다.

이튿날부터 일행들은 다시금 노역을 하기 시작했다. 산에 가서 호를 파고 나무를 베고 하는 일이었는데 조철행은 그들에게 음식을 져다 주는 일을 맡았다. 이 일은 산을 오르고 내려가는 과정에 다른 일을 할 시간적 여유가 있는 비교적 손쉬운 일이었다. 그 틈에 산에 있는 잣이며 밤 등을 따 주머니에 가득 채워놓곤 하였다. 그리고 냇가에 구덩이를 파고 이들 과일들을 잘 싸서 파묻어 놓았는데 후일 도망칠때 양식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후에 도망칠 때 보니 이것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누군가 가져간 것이 틀림없었다.

드디어 도망치기로 작정하고 어느날 밤 길을 나섰는데, 강물을 건너가야 했었다. 그런데 도저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행 중 건장한 이 몇몇이 건너가려고 옷을 벗어 던지고 들어갔는데 얼마 들어가지 않아 벌써 물이 목 근처에 닿는 것이었다. 그러니 더 이상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돌아와 다시 잠을 청했다.

며칠 후 포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아마도 아군이 전진하여 교전이붙은 모양이었다. 일행도 관리자를 따라 이동을 하였는데, 웬 사람들이 밤중에 피난민 보따리를 들고 송아지를 끌고 북으로 이동을 하는것이었다. 아군이 북진하니 지방 사람들이 이북으로 피난을 가는 것이었다. 이로 미루어 보면 그 지역은 38이북지역이 분명했다. 그러니 이북으로 피난을 가는 것이었다.

관리자가 어느 날 고등어 한 손하고 쌀 두어 되를 각기 나누어주면서

“이것은 비상식량이다.”

하고는 이북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길은 아득하기만 하였다.

일행은 길을 떠났다. 어느 산자락에 붙은 집에서 저녁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밤중에 나서려고 하니, 집주인이 하는 말이

“아군이 현리에 들어왔답니다. 4키로 정도 거리이니 밤에 가면 아군이든 인민군 패잔병이든 모두 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날이 밝으면 떠나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 곳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새벽이 아직 캄캄한데 주인이 밥을 해주었다. 얻어먹고 가는데 냇가 건너 소로길이 보였다. 길은 한 줄기 뿐이고 달리 갈 길이 없는데 앞에서 군인들 한 떼가 오는 것이 보였다. 아군인지 인민군인지 알 수가 없었고 도망을 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할 수 없이 냇가를 건너 군인들과 조우할 수밖에 없었다.

냇가를 건너가 보니 인민군 패잔병들이었다. 총을 서너 개씩 묶어 말에 올려놓고 끌고가는 사람도 있고, 눈이 퉁퉁 부은 사람도 있고,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행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 중 고성에 사는 고종사촌을 만났다. 사상을 떠나 남과 북을 떠나 친인척을 이 곳에서만나니 그 감회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둘은 서로 만나 그동안 밀렸던 얘기를 전쟁터임을 잊고 떠들기 시작하였다. 이들이 자연스레 떠드니 인민군 패잔병들이 조철행의 일행을 바라보는 시선도 부드러워져 있었다.

그렇게 한 위기를 넘기고 가다 보니 서림이 나왔다. 서림은 벌써 아군이 지나갔는지 몇 대대는 어디로 가고 또 몇 대대는 어디로 가라는 벽보가 나붙어 있었다. 그러나 군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서림을 지나 면옥치를 향하였다. 면옥치로 가는 길은 30리 무인지경이었다. 사람의 모습을 찾기조차 어려워 마음은 금방이라도 고향에 도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면옥치가 가까워 올 무렵 갑자기 수풀 속에서 세 놈이 나타나더니 “손들어” 하는 것이었다. 보니 인민군 패잔병이었다. 옷차림은 저들이나 우리나 한 가지였겠지만 그래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들보다도 더 못한 그야말로 상거지차림이었다. 따라오라기에 따라갔더니 어느 작은 빈집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그 집에 인민군 패잔병들이 가득 있었다. 방 한쪽 구석에는 그들이 세워놓은 총 여나믄 개가 세워져 있었다. 부엌에서는 콩을 볶아먹은 냄새가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니 인민군 패잔병들의 입가에는 볶아먹은 콩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인민군 패잔병들이 일행에게 음식을 갖고 있는 것이 있으면 달라고하였다. 일행들은 비상식량으로 갖고 있던 고등어 한 손이며 쌀이며 있는 대로 나누어주었다. 그런데 일행 중의 하나가 오는 길에 옥수수를 따 넣은 것이 있었다. 인민군 패잔병들은 옥수수도 달라고 했다.

그러나 일행은 그것을 주기를 한사코 거절하였다. 인민군 패잔병들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여차하면 살인이라도 날 기세였다. 조철행은 급히 그 사람에게서 죽느냐 사느냐가 문제인데 죽은 다음이면 옥수수가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설득을 하면서 옥수수를 빼앗아 인민군 패잔병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사람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그 와중에도 끝내 옥수수를 다 넘기지 않고 몇 개를 감추고 있었다. 만약에 그것이 발각되었더라면 참으로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이었다.

당시 조철행의 혁띠가 폭이 넓었다. 이곳을 발견한 인민군 패잔병이 자기 것하고 바꾸자고 하였다. 거절이란 당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니 바꾸어 줄 수밖에 없었다.

인민군 패잔병들은 일행에게 묻기를

“서림에는 국군이 있느냐?”

“없다.”

“믿을 수 없으니 너희들이 길을 안내해라.”

할 수 없이 일행 중 4-5명이 그들을 따라 나섰다. 그렇게 하여 일행 10여 명은 반으로 나뉘게 되었다. 한참을 가다가 또 다시 총을 가진 이들을 만났다. 길가에서 호박을 구워먹고 있었는데, 정체는 지방빨갱이들이었다. 아군이 북진하자 이북으로 도망치는 중이었다.

조철행은 가만히 생각해보니 또 길을 안내하라고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끙끙거리며 몸이 아픈 시늉을 했다. 사실 실제로도 몸이 아파 오던 참이었다. 옆에 있던 나이가 지긋한 사람도 눈치를 채고 “어디가아프냐” 하면서 자기 등에 업히라는 것이었다.

지방빨갱이들도 사람은 사람이었다. 조철행이 끙끙거리고 있자

“왜 이러냐?”고 묻고, 조철행을 업은 사람이

“사람이 아파 죽을라 한다”고 하니,“저 건너 집이 있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사실 일행들이 그 곳에 집이 있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다만 그들로부터 벗어나려고 꾀를 내었을 뿐이었다.

조철행의 일이 끝나자 지방빨갱이들은 몇 가지를 더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인제서 왔다.”

“인민군이 어디 있더냐?”

“인제에 인민군이 꽉 찼다.”

그렇게 문답을 주고받고는 지방빨갱이들과 헤어져 벽실령을 향해 올라갔다. 혹시라도 또 인민군 패잔병들이나 지방빨갱이들을 만날까 저어하여 조철행은 아예 업혀 가기로 작정하였다. 일행들도 그것이 더욱 좋겠다고 찬성하였다. 다행히 조철행은 덩치가 크지 않아 몸무게가 가벼웠다.

벽실령 꼭대기에 와보니 나무구멍에서 “탁! 탁!” 소리가 났다. 바라보니 또 인민군 패잔병들이었다. 이들이 밤이 되어 추우니 나무토막을 구해와 불을 해놓고 있었는데, 나무토막이 타는 소리가 “탁! 탁!”하고 났던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면옥치에 도착하였다. 이곳에 서대석이란 분이 있었는데, 예전에 조철행이 한 번 만나 본 적이 있었다. 6․25가 나기 전이었다. 조철행은 아버지를 따라 이 집에 꿀을 사러 온 적이 있었다. 당시 꿀이 한 되가 채 나오지 않아 사지는 못했지만 한 번 와 보았던 경험이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일행이 찾아들자 서대석은 반갑게 맞아들이며 고생했다고 위로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저녁이 이슥하도록 고생담을 얘기하고 있는데 마당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일행은 급히 호롱불을 끄고동정을 살폈더니 마당에서 총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이어 들려 오는 말이,

“움직이지 말고 불을 켜라.”

그러면서 총이 확 문을 뚫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서대석이 급히 불을 켰다. 역시 인민군 패잔병들이었다. 인민군 패잔병들은 서대석에게 밥을 해달라고 하더니 여기에서 자고 간다는 것이었다. 일행은 급히 다른 방으로 옮겨갔다. 안방에서는 인민군 패잔병들이 주고받는 말들이 들여왔다.

“권총을 안 차보았더니 꽤 묵직한 걸.”

그걸로 보아 아마도 소대장을 잃고 새로 소대장이 된 부하장병이었던 것으로 보였다.

이튿날 이들이 떠나고 난 뒤 일행은 주인에게 밥을 좀 얻어먹고 가자고 하여 다시 밥을 하였는데, 어디서 알았는지 귀신같이 또 인민군 패잔병들이 나타나 해놓은 밥을 다 먹고 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또 밥을 빼앗기자 이번엔 하면서 또 다시 밥을 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또 인민군 패잔병들이 나타났다. 그래도 또 밥을 얻어먹으려고 하니 벽실령 꼭대기에서 사람들이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인민군 패잔병들이 분명했다. 이 집에서 아침을 제대로 찾아먹으려고 하다간 찾아먹기는커녕 또다시 어떤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일행은 아침밥을 얻어먹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길을 떠났다. 그러면서 인민군 패잔병들을 만날까 저어하여 조철행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나이든 사람 등에 업혀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