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칼에 31곳 찔린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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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707회 작성일 2010-04-0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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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에 31곳 찔린 사나이

6․25가 터진 다음 9․28 수복을 하고 양력으로 11월-12월쯤 되었을 때였다. 아군이 북진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후방에 인민군 패잔병들이 많았고 더불어 미처 떠나지 못한 지방빨갱이들도 많았다. 연곡면 부연동에 지방빨갱이들이 굴을 파놓고 은신하고 있다가 식량을 조달하려고 견불리를 침입했다.

당시 이들은 식량만 조달해 간 것이 아니라 마을주민 몇 사람을 짐꾼으로 데리고 갔는데, 고개를 넘자마자 자신들의 종적이 발각될까 두려워 데리고 간 주민들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총을 쏘면 총소리가 날까 저어하여 총에 달린 대검으로 찔러 죽이려고 하였다.

대검이 살 속으로 파고드는 순간 조병시는 옆으로 살짝 몸을 돌렸다. 그러자 대검이 빗나가자 찌르던 사람은 몸의 균형을 잃고 앞으로 몸이 숙여질 수밖에 없었다. 화가 난 지방빨갱이는 “이 놈 봐라” 하더니 다시 힘을 주어 조병시를 찔렀다. 조병시는 대검이 살에 닿는 순간 나름대로 살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딱딱해진 살을 대검이 쉽게 파고들지 못하였다.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고 피하조직에서 대검이 머물러있었던 것이다. 대검이 깊숙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느낀 지방빨갱이는 다시금 여러 번 조병시의 몸을 찔렀다. 이미 조병시의 몸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러나 조병시는 정신을 잃지 않고 대검이 살 속으로 들어올 때마다 살에 힘을 주었다. 그러다가 조병시는 정신을 잃었다.조병시가 깨어나 보니 길가였다. 정신을 수습하여 겨우 몸을 추슬러 내려와 생명을 건질 수가 있었다. 나중에 몸에 찔린 곳을 세어보니 무려 31곳이었다. 찌른 사람도 경험이 없던 사람이라 제대로 찌르지 못하고 방어한 사람도 나름대로 기운이 있어 생명을 구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조병시는 수(壽)를 누리고 2008년 봄에 91살의 일기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