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피난할 겸 모를 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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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683회 작성일 2010-04-0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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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난할 겸 모를 심자

박창호는 6․25가 터질 무렵에 14살이었고 인구1리에 살고 있었다. 6․25가 터지기 전날 저녁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당시 비가 오지 않아 모를 심지 못해 걱정이었던 부모님은 늦게나마 오는 비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새벽녘에 갑자기 포탄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서 어수선한것이었다. 순경들이 다니면서 하는 말이 전쟁이 났으니 피난을 가라는 것이었다. 박창호의 부모님은 상의하시더니, 그러면 피난을 할 겸 광진리3반에 있는 다락논에 가 모를 심자. 다락논이 있는 곳이 외지기 때문에 안성마춤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통장 등 귀중품은 챙겨 가자고 어머니가 하는 말씀을 들었다. 그렇게 하여 박창호의 집안은 피난을 할 겸 모를 심으러 다락논으로 향했다.

광진리3반 다락논에 도착하여 모를 심으려는 부모님은 도저히 모를 심을 상황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시 모를 심는 것은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와 제대로 살림을 챙겨 남애로, 다시 주문진으로, 또 다시 연곡으로, 마지막으로는 강릉으로 피난을 갈 수밖에 없었다. 남애만 가면 된다 하여 남애를 가보면, 순경들이 다시 주문진으로 가라는 것 이었다. 그렇게 하여 주문진을 가면 다시 연곡으로 가라는 것이었고, 또 연곡으로 가면 또 다시 주문진으로, 주문진에 가면 강릉으로 가라 는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피난살이는 결국 강릉에서 하룻밤을 자고는 다시 삽당령을 넘어 영천으로 해서 울산방어진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