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술로 푸는 피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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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841회 작성일 2010-04-0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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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로 푸는 피멍

고정원은 남편이 경찰이었다. 그래서 6․25가 터지고 세칭 100일정치를 받는 동안 숱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었다.

시아버지 형제가 3형제였다. 하루는 지방빨갱이들이 오더니 철사줄로 이들 3형제의 손목을 뒤로 묶더니 모두 끌고 가는 것이었다. 자라목이라는 데, 지금은 동해석산이 있는 곳인데, 그 곳에서 모질게 두들겨 맞고는 거의 기다시피 하여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 술을 해서 먹으면 피멍이 사라진다고 하여 술을 빚어 큰댁에서 해먹었다. 고정원의 집안 형편은 술을 빚을 형편이 아니었기에 가만히 있었더니 큰댁에서 빚은 술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그 술을 먹고는 시아버지의 피멍도 많이 가시었다.

그 뒤로는 다시금 붙들어 가는 경우는 없었지만, 그래도 겁이 나 밤낮으로 인근 산 속으로 숨어 들어가 살았다. 시부모를 비롯하여 시고모, 시조카 등 무려 5명-6명이 숨어살았는데 이때 이들에게 밥을 해다주는 것은 고정원의 몫이었다. 그런데 이 밥을 그냥 해다 줄 수는 없었다. 지방빨갱이들에게 발각되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방빨갱이들이 찾아왔다가 멀리 사라지면 그때 밥을 부리나케 하여 머리에 이고 마치 나물하러 가는 것처럼 위장하여 산 속의 가족에게 갖다주곤 하였다.

사실 지방빨갱이들도 무서웠지만 비행기 폭격도 무서웠다. 한 번은 산등으로 올라가는데 인민군이 발견하고는 하는 말이, “이렇게 산 속에 있으면, 비행기 폭격이 아니라 우리들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으니 내 다니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말도 일리가 있어 그 다음에는 마을로 자주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