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군인을 숨겨주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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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235회 작성일 2010-04-0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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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인을 숨겨주었더니…

김신월은 6․25가 터지자 시부모와 시누이들과 함께 강릉 사기막으로 피난을 갔다가 하룻밤을 자고 돌아왔다. 집에 들어와 보니 사람들이 6명이 있었는데 셋은 군인이고 셋은 경찰이었다.

김신월 일행이 들어가니 6명이 일행에게 묻기를

“인민군이 나갔습니까? 배가 고프니 밥 좀 주시오.”

당시 밥은 없고 보리쌀 삶아놓은 것이 있어 그것을 드렸더니 그걸 모두 퍼먹고 나서는 하는 말이

“세상이 온통 인민군 천지이니 우리를 숨겨달라.”

이 사람들 6명 중 3명은 경상도 출신 군인이었고, 3명은 북분리, 대치리 등 근처마을의 경찰이었다. 그래서 경찰 세 명은 어떻게 설득을해서 자기 마을로 돌아가도록 설득하였고 군인 3명만 숨겨주기로 약속하였다. 우선 이들이 갖고 있는 총6자루와 실탄 300발, 군복과 경찰복 등을 모두 헛간 속에 숨겨놓았다. 예전 집들은 고무락이라 해서 용마루와 지붕 꼭대기 사이에 빈 공간이 마치 다락처럼 컸었다. 그래서 이 곳에 널빤지를 깔고 자기에 편하게 만들어 놓고 또 요강도 올려놓아서 이들이 숨어 지내기에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당시 김신월의 집이 기와집으로 인근에서는 가장 넓은 집이어서 인민위원회 등 여러 주요한 정치적 모임을 이 집에서 갖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고무락에 있는 이들은 내려오지도 못하고 그들이 하는 여러 말들을 듣고는 걱정을 하기 시작하였다. 전쟁이 결코 아군에게 유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한 달여가 지나간 다음 시아버지는 이렇게는 더 이상 안 되겠던지 이들 군인 3명을 불러놓고는 하는 말이

“우리집 아들이 경찰이다. 그렇다 보니 나도 모진 고통을 당하고 집도 감시를 받고 있는데, 언젠가는 너희들도 발각을 당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 모두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또 금방 이 전쟁이 끝나지 않을테니 이제는 너희 집 찾아가거라.”

그리고 나 보고 의복을 장만하라고 시켰다. 그래서 주문진 시장에 나가서 고무신 3컬레와 맷고재 3개를 샀고, 할아버지가 입던 것과 아랫집에서 얻어온 중의적삼 등 3벌을 마련하여 주었다. 그렇게 하여 이들을 떠나보냈는데, 그런데 이들이 얼마 가지도 못하고 연곡면에서 그만 붙잡히고 말았다.

어느 날 김신월이 베를 날고 있는데 지방빨갱이인 외다리가 턱 대문간에 나타나는 것이었는데 그 뒤에 군인 3명의 모습이 보였다.

김신월은 순간적으로 “아이고, 이제는 죽었다”고 소리쳤다. 마침 옆에서 이 소리를 듣고 있던 시어머니는

“미쳤나. 죽긴 뭐 지랄하느라고 죽어.”

그렇게 시어머니는 말씀만은 어린 며느리를 안심시키느라 강단이 있게 말씀하셨지만 그러나 얼굴빛은 좋지 못하였다.

군인들 3명은 모진 고문을 당했는지 한 달여 간의 생활을 이실직고를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지방빨갱이들이 이들 3인을 데리고 집으로 찾아온 것이었다.지방빨갱이들이 현장검증을 하면서 총알, 총 등을 찾아내고는,

“시아버지는 어디 가셨느냐?”

“시아버지는 소침을 놓아주러 개매(주문진읍 향호리)에 가셨다.”

“신랑은 어디 있냐?”

“신랑은 경찰이어서 피난갔다.”

“경찰가족이어서 군인을 숨겨주고 그랬구만.”

그러더니, 지방빨갱이는 시아버지가 들어오면 분주소로 오라고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시아버지가 오신 다음 저간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곧바로 분주소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밤이 다하여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필경은 큰 사고가 났구나 짐작하고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김신월은 시어머니와 함께 분주소로 갔다.

당시 분주소 주임이 정호○이라고 아는 사람이었다. 김신월 일행을 보더니 “주리를 틀 년들아” 하면서 막 욕을 하는 것이었다. 김신월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침 동창생이 한 명 분주소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아버지 면회를 주선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간신히 시아버지를 면회할 수 있었는데, 시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아침을 해다 다와. 그리고 누구누구 등 빨갱이 두목들을 만나보라.” 이러는 것이었다.

그래서 누구누구 등을 만나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지방빨갱이들이 매일같이 죽인다고 말하고 다니니 김신월 가족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보름이 지나 어느 날 저녁에 시아버지가 허리춤을 잡고는 집으로 들어오시는 것이었다. 가족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후에 들은 말이지만 석방의 과정은 이러했다.어느 날 현남면의 지방빨갱이들이 모두 모여 시아버지를 죽일까 말까를 의논했다. 정호○이 시아버지에게 묻기를

“아들을 왜 경찰을 시켰냐? 먹을 게 없어서 시켰냐?”

“지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말릴 수가 있나.”

그 외 몇 가지 더 묻고는 지방빨갱이들의 70%가 시아버지가 큰 잘못이 없으니 살려주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더라는 것이다.

“참. 할아버지가 운이 좋았소. 오늘 우리가 회의해서 석방하기로 결론이 났소. 그래서 풀어주겠소.”

그렇게 하여 시아버지는 정호○의 덕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수색대가 들어온 다음 시아버지는 정호○을 도와줄 수가 없었다. 잘못 하다간 같이 죽을까 두려워한 까닭이었다. 정호○은 댓골의 한 친구집에 있다가 끝내 수색대에 붙들려 죽었다. 지금도 그때 일 을 생각하면 김신월은 가슴이 아팠다. 누구는 시아버지의 목숨을 살려주었는데, 그런데도 누구를 도와주지 못한 까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