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수색대의 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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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850회 작성일 2010-04-0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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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색대의 횡포

수색대는 9.28 수복이 될 때 선두에서 목숨을 내걸고 먼저 들어온 군인들이었다. 목숨을 내걸고 들어온 만큼 일 처리가 시원시원한 점도 있었지만 때로는 좋지 못한 일들도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부녀자 겁탈이었다.

심일○은 정자리에 살고 있었고, 남편은 경찰이었다. 6․25가 터지자 심일○은 경찰인 남편을 따라 피난을 가면서 집에는 나이 먹은 시부모와 19살 먹은 시누이만 남겨두었다.

시부모와 시누이는 100일 정치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경찰가족이라하여 신변의 위험이 가중되자, 정자리 근처의 서리골이란 곳으로 피난을 갔었다. 산 속에다가 움막을 지어놓고 집에서 쌀과 김치를 갖고 가서 생활을 하였는데, 쌀과 김치가 떨어지자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집으로 잠시 돌아왔다. 마침 그때가 아군 수색대가 들어올 무렵이었고 시어머니와 시누이와 마주치게 되었다.

수색대는 시어머니에게 밥을 해달라고 하고는 식사를 한 다음에 시누이를 끌고 학교 뒤쪽으로 가버렸다. 당시 수색대는 학교에 주둔하고 있었다. 당시 정황을 목격한 동네 아주머니들의 말을 들어보면, 학교에서 시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여 너 같은 것은 죽여야 한다면서 끌고 나오더니 곧이어 총소리가 탕탕 났다는 것이다. 이후 시누이의 소식은 알 길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