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소 한 마리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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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797회 작성일 2010-04-0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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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 한 마리의 기쁨

강숙자는 하월천리 출신이지만 인구2리에 시집을 온 다음에 6․25를겪었다.

이른바 백일 정치가 지나고 나서 동짓달이 되자 ‘겨울 난리’를 겪어야 했다. 중공군이 내려온다고 하여 남들은 피난을 갔는데 강숙자는 시어머니가 병이 걸리는 바람에 피난을 갈 수 없었다. 그래서 할 수없이 인구리에서 겨울난리를 겪게 되었다. 그 해 겨울엔 눈도 참 많이 왔었다.

시어머니가 병환이 있어 멀리 거동을 할 수는 없어도 가까운 곳으로는 피난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인근 산 속에 구덩이를 파서 움막을 만들어 놓고 집에서 쌀을 갖고 가 밥을 해먹곤 하였는데 당시 반찬이라고는 장이 전부였다. 밥도 비행기 폭격이 무서워 저녁에 해가진 다음에야 해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인근 산 속에서 3달을 살았다.

당시 키우던 소 두 마리도 산 속으로 끌고 들어갔는데, 소도 무엇을 아는지 3달 내내 울지를 않는 것이었다. 어쨌든 3달을 산 속에서 보내고 집으로 내려와 있으니 이번에는 패잔병이 밑에서부터 올라오면서 소란을 피우니 할 수 없이 아군이 진격한 북쪽으로 다시 피난을 갈 수밖에 없었다. 소 두 마리를 끌고 양양까지 왔을 때였다. 갑자기 군인들이 나타나더니 작은 소를 끌고 가면서 큰소는 농사를 지을 때 쓰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군인들이 인민군 패잔병인지 아니면 군인인지알 수는 없지만, 강숙자는 소가 한 마리라도 남아 있게 된 것을 감사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