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죽으면 죽었지 못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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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810회 작성일 2010-04-0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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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으면 죽었지 못 가

이○국은 지금은 인구리에 살고 있지만, 당시 아랫면옥치에 살고있었다. 당시 면옥치는 남북한간 접경지대로서 상호간 침투가 잦았다.

1949년경의 일이었고 당시 13살이었다.

한번은 집에서 자고 있는데 부엌에서 무엇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일어나 부엌문을 열고 보니 시커먼 놈 두 놈이 무엇인가 뒤지고 있었다.

깜짝 놀란 두 놈이 누구냐고 묻기에 주인이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두 놈은 주인이면 가만히 들어가 있으라고 하더니, 좁쌀로 밥을 해먹는 것이었다. 당시 쌀은 귀해서 좁쌀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공비임을 짐작한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아랫집에 가서 알리라고 하면서 두 놈 몰래 내보냈다. 마침 아랫집에 한청 부단장 집이 있었다.

밥을 먹던 두 놈이 별안간 문을 열고 빠꿈 들여다보더니 할머니가 없는 것을 찾아내었다. 그러더니 “이거 큰일났다 신고하러 간 모양이다” 하더니 총을 아버지에게 들이대고 앞장을 서서 길안내를 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길도 잘 모르고 나이도 많아 못 간다”고 하니 두 놈은 “따라 나서지 않으면 죽인다”고 하였다.

그러니 할 수 없이 따라 나섰다. 그래서 아버지는 천천히 가면서 아군이 올 때를 기다렸다. 아버지가 천천히 가니 두 놈은 빨리 오라고 재촉을 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천천히 갔는데, 끝내 연하동까지 가도 아군의 기척은 종무소식이었다.

면옥치리의 연하동만 넘어가면 이북이었다. 이 곳은 넘어가서는 안되는 곳이었다. 당시 포락이 나서 물이 나가면서 논이 이렇게 떨어진곳이 있었다. 달이 환하지만 그 곳은 그늘이 져 있었는데, 얼마 안 가면 38선을 넘어갈 테니 걱정이었다. 그래서 그 곳에서 아버지는 “죽으면 죽었지 못 간다”고 하였다.

그러니 두 놈이 칼을 들이대면서 다시금 위협을 하는 것이었다. 총을 쏘면 총 소리가 날까봐 총을 쏘지 못하고 칼을 들이댄 것이었다.

“그래도 죽으면 죽었지 못 간다”고 했다.

그러니까 두 놈이 하는 말이,

“그러면 한 시간 있다고 가라”고 하였다. 자신들의 자취가 발각되는것을 두려워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두 놈이 저만치 가는 것을 보고는 곧바로 포락이 진 그늘 속에 숨어 살살 기어서 연하동의 형칠이네 집으로 내려왔다.

“형칠이, 형칠이.” 하고 부르니 형칠이가 나오면서

“자네가 어쩐 일이냐? 자네가 공비에게 붙들려 갔다고 하여 지금 38선에 비상이 걸려 야단이다.”

당시 이 지역을 지키고 있던 부대는 8사단 10연대 5중대였다. 중대 사무실이 어성전에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어성전에 가서 도망친 사연을 신고를 하여야 했다. 그래서 형칠이에게 말하기를

“자네가 우리 집에 연락을 좀 넣어주게. 무사히 빠져나왔다고.”

형칠이가 집으로 연락을 하러 가는 도중에 면옥치 서낭고개에서 어머니와 마주쳤다. 형칠이가 어머니에게

“어디 가십니까?”

“영감이 붙잡혀 갔는데 소식을 알아보려고 여기까지 왔네요.”

“당신 남편은 지금 무사히 빠져나와 지금 어성전 5중대에 가서 신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집에 돌아가 계십시오.”그래서 어머니는 종내 가슴을 쓸어내리고 집으로 돌아오고, 아버지는 어성전의 5중대에 가서 신고를 하고 화랑 담배를 두 갑 얻어 가지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