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과 함께 떠나는 향토사 여행

체험학습보고서 2012/5/25(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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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922회 작성일 2013-04-05 11:31

본문


고성관 (1-3)


장 소 : 오산리 선사유적 박물관

제 목 : 오산리 선사유적 박물관

토기의 순서 : 누른무늬토기→덧무늬토기→빗살무늬토기 등의 순서로 발달 굶거나 병으로 죽은 사람들을 보고 잘 되게 해달라는 의미로 안면상을 만들었음. 약 400여 점의 유적 발굴, 오산리 선사인이 가장 쉽게 구할수 있는 것은‘도토리’였다.

돌자귀 : 나무를 깍아 다듬는데 사용/가락바퀴 : 물레로 실을자를 때 쓰이는 가락

빗살무늬토기 : 기원전 4500년 무렵에 바닥이 뾰족한 모양의토기

누른무늬토기 : 기원전 4000~3000년 수렵에 아가리 주변에만 무늬를 새긴 토기

느 낀 점 : 우리나라의 과거를 한눈에 쉽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쉬운점 : 조금 피곤한 때 와서 집중이 안됐음.



이용준 (1-2)


장 소 : 오산리 선사유적지

내 용 : 토제인면상은 오산리선사유적지에서 출토된 흙으로 빚은 얼굴상은 가로 4.3cm, 세로 5.0cm 가량의 작고 둥근 점토판을 손가락으로 눌러 사람얼굴 모양을 표현한 것을 풍요를 기원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초기 신상의 하나로 그 가치가 높다. 그리고 오산리에서 발견된 흑요석은 가공이 자유로워서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날을 만들 수 있어서 구석기인과 신석기인들은 먼거리를 이동하거나 교역에 이용했다. 신석기시대의 토기는 덧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가 대표적이며 덧무늬토기는 겉면에 진흙띠를 붙이거나 맞접어 돋게하여 무늬를 만들고 빗살무늬토기는 빗모양의 무늬새기개로 토기의 겉면을 누르거나 그어서 각종 기하학적 무늬를 새긴 토기이다.

느 낀 점 :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우리조상의 생활을 알 수 있었다.

아쉬운점 : 시간이 없어 많이 둘러보지 못했다.



박윤동 (1-2)


장 소 : 오산리 선사유적지

제 목 : 오산리를 다녀와서

우리나라 최초의 토기→누른무늬토기이고(아가리는 순수우리말) 이곳에서 유물이 발견되었다.(사람얼굴, 돌기구, 면상) 신석기 사람들은 강이나 바다 주변에서 움집을 짓고 정착생활을 하였다. 신석기 시대 8000년전에 흑요석이 많이 나올 신석기 시대의 식량 생산은 주로 수렵과 채집에 의존하였으며 토기류(빗살무늬, 덧무늬)와 돌을 갈아 만든 간석기가 대표적인 유물이다. 신석기시대의 토기의 종류에는 강원영동지역의 빗살무늬토기, 누른무늬토기, 덧무늬 토기가 있다. 또 발견된 흑요석은 거의 백두산에서 나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기원전 8000년무렵 고기잡이를 시작하였고 야생식물인 도토리는 신석기시대의 주된 생계수단 중 하나였다.

느 낀 점 : 중3때 역사시간에 배웠던 선사시대의 도구나 수집방법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책에서만 글로 보다가 사진으로 보니 백문이 불여일견이었다.

아쉬운점 : 강의를 너무나 듣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떠들어서 강사님이 힘들게 강의하시고 잘 들리지 않았다.



최진호 (1-2)


장 소 : 오산리 선사유적 박물관

제 목 : 오산리 유적지

8000년전부터 여기에 인간이 살았다는 걸 보여준다. 1977년 개척을 하면서 14개의 움집터가 발견되었고 식기가 발견되었다. 주로 이사람들은 신석기에 바다 또는 강에서 생활을 하였다. 이사람들은 움집을 짓고 토기를 만들었다. 토기가 만들어진 순서는 누른무늬가 만들어졌고 좀더 발달하여 민무늬와 빗살무늬 토기가 만들어졌다. 신석기에는 먼거리에서도 사냥이 가능한 활과 화살을 이용하였다. 주로 사슴을 많이 잡았고 뿔등으로 생활도구를 만들었다. 도토리도 신석기 시대에 중요한 식물자원임을 알 수 있다. 선사시대 도구는 결합식어구, 어망추, 돌촉화살촉, 돌도끼 등이다. 청동기로 오면서 실패를 거듭한 끝에 이루어진 금속은 인류역사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에 따른 기술의 진보와 향상은 생산력 향상, 사회분업 교역의 중대함을 가져왔다.

느 낀 점 :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가장 먼저 살아왔다는 것에 자랑스러웠고내가 모르던 것을 더 잘 알게 되었다.

아쉬운점 : 볼 것은 많은데 직접 물건을 사용할 기회를 체험할 수 없는게 많아 아쉬웠다.



이일권 (1-1)


장 소 : 오산리 선사유적 박물관

제 목 : 오산리 선사유적지에서 발견된 물품들

14개의 움집과 사람 얼굴등을 포함한 400여 가지의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토기 중 누른무늬토기가 가장 먼저 탄생하였다. 풍요와 다산을 기리는 토제인면상이 발견되었다. 서해안 지방에서 많이 보이는 어망추와 결합식 어구형태가 출토되었다. 도토리 화석이 발견되어 도토리는 신석기시대에 중요한 식물자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흙으로 빚은 얼굴상인 토제인명상은 가로4.3cm, 세로5.0cm의 작고 둥근 점토판을 손가락으로 눌러 사람 얼굴모양을 표현한 것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어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청동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가 등장하는데 초기 철기시대와 원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사용되었다. 백두산 주변의 것인 흑요석이 발견되었다.

느 낀 점 : 어렸을 때 몇 번 와서 무엇이 있는지는 알았지만 이번에 오니 좀더 자세히 보게 되었고 국사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좋은 체험인 것 같다.

아쉬운점 : 이동경로가 표시되어 있지 않아서 보는데 좀 복잡해서 아쉬웠다.



이형섭 (1-1)


장 소 : 오산리 선사유적 박물관

제 목 : 오산리선사유적

1977년도 농경지를 개간하다가 14개의 움집터가 발견되었고 그밖에 사람얼굴, 돌창, 돌검이 발견되었다. 신석기 시대에 바다에서 또는 강가에서 어로 생활을 하였으며 기원전 8000년경 정착생활을 하기 위해 움집을 지었다. 또 바다에 살면서 사용하기 위한 토기를 만들었는데 제일 먼저 만들어진 토지는 누름 무늬토기가 있다. 점차 발전하여 민무늬토기와 빗살무늬토기가 만들어졌다. 또한 점토를 눌러만든 토제인면상이 있는데 풍요를 기원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농경이 시작된 신석기때에는 벼농사가 아닌 조,기장을 수확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제1토지층에서는 흑요석이 별견되었는데 가공이 자유로우며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날을 만들 수 있어 많이 사용하였다. 또한 신석기시대에 의류가 생성되었다는 걸 증명해 주는 것으로 가락바퀴가 있다. 가락바퀴는 실을 만들 때 나무나 쇠를 끼워 그 회전을 돕는다. 청동기 만드는 과정은 용액만들기,거푸집에붓기, 날세우기, 손질하기가 있다.

느 낀 점 : 양양에 살면서도 잘 알지 못했던 양양의 선사유물들을 알게 되어 새로웠다.

아쉬운점 : 더 시간이 많았으면 좋았을텐데 일정이 빡빡하다보니 자세히보지 못했다.



이충호 (1-1)


장 소 : 오산리 선사유적 박물관

내 용 : 양양에 선사유적지가 발견되었는데 약 4000여점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빗살무늬토기가 다들 제일 먼저 생성된 토기라고 알고 있지만 누름무늬토기가 제일 먼저 만들어졌다. 누름무늬 토기는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만들었다고 한다. 오산리 선사유적지는 약8000년전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신석기 유적으로 확인되어 1997년 사적 제394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선사유적지 박물관에 들어가니 토기제작과 수렵생활 그리고 채집생활, 어로생활 등을 인형들을 통해 자세하게 엿볼수 있었다. 또사냥에 사용했던 무기와 물고기에 썼던 바늘 등을 보았는데 신석기 사람들의 생활을 상상할 수 있었다.

느 낀 점 : 선사시대에는 여럿이 무리를 지어 생활했으며 간단한 도구들로 식량과 사냥을 했으며 각자 분담을 하였다. 우리생활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아쉬운점 : 더 자세히 보고 싶었으나 박물관에 선사유적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였다.



송율범 (1-1)


장 소 : 오산리 선사유적 박물관

제 목 : 오산리 선사유적지 관람후기

최초의 토기는 누름무늬 토기이다. 움집 주변에서 어구를 손질하고 야외노지에서 사냥한 멧돼지와 어패류로 음식을 준비하여 의복을 준비하는 모습이 신석기시대의 일반적인 생활모습을 나타내준다. 오산리 선사인들은 채집을 통해 각종 나무 열매와 뿌리등에서 식물성 식량을 얻었고 사냥을 통해 사슴과 멧돼지, 토끼 등과 같은 동물성 식량을 얻었다. 오산리에서 발굴된 잠자리의 가장 일반적인 크기는 18㎡정도였다. 움집은 지상가옥의 형태이며 내부에는 강돌을 네모나 둥글게 돌려서 만든 화덕자리가 놓여 있고 집자리 바닥 가장자리에는 기둥을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느 낀 점 : 우리나라에 이렇게 오래된 유적이 있는줄 몰랐다. 박물관을 와서 더욱더 석기시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아쉬운점 :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어서 아쉬웠다.



윤지민 (1-3)


장 소 : 오산리 선사유적 박물관

제 목 : 오산리 선사유적 박물관을 다녀와서

8000년 전에 발견되었다. 움집이 발견되고 돌을 갈아서 사용하였다. 주로 해변과 강에서 살았으며 활과 화살을 이용했다.오산리에서 발굴된 집자리의 크기는 9~49㎡이였으며 가장 일반적인 크기는 18㎡이였다. 누른무늬토기와 토제인면상이 발견되었다. 흑요석은 화산암의 일종으로 용암의 분출에 의해 생성된다. 양양오산리에서 발견된 흑요석은 백두산 주변의 것으로 보인다. 신석기 시대 때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여러 가지 도구를 만들어 썼는데 결합식 어구, 어망추 등이 있다. 신석기 시대에는 사슴, 멧돼지 등 중소형 짐승과 날짐승을 사냥하게 되면서 사냥도구와 기술이 발달하였다.

느 낀 점 :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을 알게 되었고 무슨 도구를 만들어 썼는지 어떤 도구로 사냥했는지 잘 알았다. 다음에 또 왔으면 좋겠다.

아쉬운점 : 더 넓었으면 좀 더 많은 종류의 도구, 화석등을 가져 놓을 수 있었을텐데 좀 좁다는 것이 아쉬웠다.



장장규 (1-4)

장 소 : 오산리 선사유적 박물관

내 용 : 소풍을 통해 오산리 선사유적 박물관에 들리게 되었다. 오산리선사유적 박물관은 약 8000년 전의 신석기 시대의 유적인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유적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밝혀졌다. 신석기 시대 때는 수렵생활과 어로생활을 했던 것이 유물들로 나타나 있으며 음식을 저장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유물들로는 덧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 돌톱, 결합식 낚시바늘, 흑요석, 토제인면상 등이 있는데 덧무늬토기는띠모양의 흑을 덧붙인 토기이다. 빗살무늬토기는 빗살무늬를 새긴 토기이고 돌톱으로 나무를 잘랐으며 결합식낚시바늘을 통해 어로생활을 한 것을 알 수 있고 흑요석으로 고기를 잘랐다. 흑요석은 화강암의 일종으로 원산지마다 구성성분이 다르기 때문에 지역간 문화교류를 알 수 있다. 그리고 흙으로 빚은 얼굴상인 토제인면상은 다산과 풍요를 기원했다고 한다.

느 낀 점 : 잘 몰랐던 신석기 유적에 대해 더 깊게 알 수 있었고 사회자의 퀴즈덕분에 더 마음속 깊이 새길 수 있게 되어서 유익했다.

아쉬운점 : 시간이 부족하여 다시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황광규 (1-4)


장 소 : 오산리 선사유적 박물관

제 목 : 오산리 선사유적 박물관

신석기시대에 주로 수렵, 채집에 의존하였다. 그리고 토기류와 간석기가 대표적인 유물이다. 신석기 시대에는 가장 원시적인 형태인 초가집이 등장 땅을 파고 지은 움집에 화덕을 설치해서음식을 조리하였다. 신석기 시대에는 돌과 뼈를 쪼갤 때 자연적으로 생기는 날을 이용하였던 구석기인들과는 달리 돌과 뼈를 원하는 형태로 잘라 사용하였다. 쌍호에서 어로 생활을 하며 다양한 식량자원을 얻었다. 오산리 선사유적지에는 토제인면상이 유명한데 가장 오래된 초기 신상의 하나라서 그 가치가높게 평가된다.

느 낀 점 :  옛날부터 지혜롭고 신기하게 생활하였다는 점에서 놀랐다. 그리고 양양에서 최초로 발견되어서 정말 좋았고 많은 유적들과 그 당시를 재현하여서 좋았다.

아쉬운점 : 아직 구경할게 많이 없어서 아쉽고 체험할 수 있는 것도 많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김영훈 (1-4)


장 소 : 오산리 선사유적 박물관

제 목 : 체험학습 활동일의 일상

박물관에 들어가기전 상품을 걸고 퀴즈대회를 하여 아이들의 관심을 이끌어 냈다. 박물관에 들어온 후 시작에는 시대의 역사가 표로 정리되어 있으면서 각각문화에 설명과 그림이 있어 비교로 인한 차이점을 알 수 있다. 중앙으로 가면 모형으로 만든 구석기, 신석기 등의 선사시대의 생활모습을 볼 수 있으며 인간이 어떻게 진화했는가를 알 수 있다. 물고기도 예를 들면 처음에는 맨손, 그다음은 창, 그다음은 어망 등으로 더욱더 지능이 발달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시실에는 토기, 무기 그리고 그들이 사용했던 도구가 전시되어 있는데 복원된 것도 있고 조각난 것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철의 발견 과정과, 제련 그리고 사용방법과 유적이 있었다.

느 낀 점 : 인간의 진화과정과 사람들이 생각하여 더욱더 편안해지려는 욕구가 느껴져 원주민도 역시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느꼈다.

아쉬운점 : 너무 많이 와서 보는 것과 설명들이 너무 지루하였다.



김성윤 (1-4)


장 소 : 오산리 선사유적 박물관

제 목 : 선사시대 신석기인들의 모습

신석기시대의 식량생산은 주로 수렵과 채집, 토기류가 대표적이다. 쌍호는 오산리 신석기인들의 어로생활 터전으로 식량자원을 지원해주는 호수였다. 오산리 신석기인들은 서해사람들과 달리 조개류도 먹기 어렵고 적응하기 힘들었다. 신암리에서 출토된 인물상은 커다란 유방과 잘록한 허리의 여성상으로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지모신으로 추정된다. 신석기 시대에는 활을 이용한 사냥을 하고 사슴을 가장 많이 사냥하였고 가죽과 뼈, 뿔 등이 각종생활도구로 이용됐다. 움집자리크기는 9~49㎡이고 지름은 6m정도의 지상가옥이다. 토기는 인간이 흙과불을 이용하여 만들어낸 최초의 발명품이다.

느 낀 점 : 오산리 사람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는게 신기하고 대단하다. 양양지역에 이렇게 역사있는 곳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와보니 대단하다.

아쉬운점 : 아직까지 발굴하지 못한 유물이 남아있을 것 같아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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