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철광산의 문화사-2

鑛夫들의 이야기-전기수리실 및 압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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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502회 작성일 2013-04-2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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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 남문리 최정근64세)
사례 1
전기계의 광범위한 전기시설 수리 영역
전기부서에서 하는 일은 광산에 있는 모든 전기 장비를 점검 및 수리를 하는데
양양 변전소에서부터 6,600 볼트로 송전하는 전기가 광산까지 도 착되면 우선 전력을 3,300 볼트로 변압기에서 변조를 시켜서 중점적 으로 각 항이라든가 압기실 그리고 각 부서 등으로 보내는 일을 도 맡아 하고 광산 사택이라던가, 양양 변전소에서 광산으로 송전하는 전기를 총괄하는 부서이다.
광산(장승리)사택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전기 문제도 전기 수리실 에서 관리하였다.
향내에 전기 플러그가 들어간 휴게실이나, 안전지대에 물이 생기 니까 물을 퍼내는 150마력짜리 펌프(3,300볼트)를 사용하기 위한 전 선을 확장.수항300레벨에는 전동차(트로리카)1Ton 급 이상 되는 걸 20대씩 달고 다니는 전동차의 위에 라인은 플러스선이.레일에는 마이너스 선이 가는 전기 시설도 되어 있었다.
전기계 직원은 매우 광범위 했는데 전기계의 직원은 수리실 인원 (8 ~12),발전소 기록요원(3교대1명씩3명),배전실(선광장 직원3 명. 2교대)전기주임1명,발전실에 주임1명, 배전실에도 주임 1명 등 대략 20여명 정도였다.
압기실은 각 항에 공기를 넣어주는 시설(400마력 모터1대, 150마 력 모터5대)인데 하루 종일 돌아가는데, 착암기라든가 로더는 압기 실에서 보내는 공기를 이용해서 사용하였다.
전기를 사용하는 큰 기계는2수항400마력짜리 권양기(5ton을 끌 어 올릴 수 있는)와 200마력 짜리 볼밀(광석이 들어오면 가루로 잘 게 부스는 역할을 하고,주먹 만 한 볼이 투입되는 기계.)이 있었으 며,쪼크레샤가3~4대 정도 있었으며,모로스 체인이라든가, 쪼크레 샤로 들어가기 위한 굵은 체인 돌아가는 기계 컨베어, 철과 폐석을 분리하는 DMS라고 전자석선별기, 더불어 제어시설까지 광범위하게 공급했다.
항내에 전기를 이용하는 장치에 문제가 발생하면 전기수리실 전 ( 수실)은 퇴근 후에도 급한 사안이 발생하면 다시 출근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기시설이 최고 말단지역까지 뻗어 있었다. (경험상 수직 최대는 450m,수평은1.5Km)
전기 수리실은 일이 많이 밀려 있는데 모터를 수리 할 때는 코일 을 재생시켜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72년에12명/88년에8명퇴직하기 전까지는 2명씩 야간 대기조 를 편성하여 운영하였다.
펌프를 이용해서 물을 퍼 낼 때는, 깊이가 깊으면 두 대 이상을 이용해서 중간 부분에 한번 거친 후 다시 퍼내는 과정을 거쳐 물을 퍼낸다.
무거운 모터를 옮길 때 굴 안에서는 레바형식의 체인부럭으로 들 어서 모터를 옮기고, 바깥에서는 페이로다를 이용하고 삼바리를 세 워서 광차처럼 만든 바가지를 이용해서 옮겼다.
변압기가 고장이 난다던가, 뚱딴지가 갈라져서 비만 오면 전기가 누전되고,솔개미(독수리)가 앉았다가 날아가면서 부딪히면 습도가 높을 때 마다 누전이 되는 경우가 발생하였고 광산 사택의 전기 검 침기까지 일일이 확인하였다.
광업소에서부터 한전까지 세워져 연결되어 있는 전봇대 애자를 쌍안경으로 이상이 없는가를 점검을 해야 하고 3년에 한번 씩 애자 를 닦아줘야 하는데 한전에서 관리한 것이 아니라, 광업소 자체에서 점검을 이행하였다.
한전이 발전하기 전에는 광업소 자체의 발전기를 이용해서 전기 를 사용하였는데
자체로 발전할 때 냉각수에 사용된 물이 뜨거워서 식힌 후에 다시 냉 각수로 쓰는 경우도 있었으며, 그 뜨거운 물로 목욕탕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그때 당시 한전이 단전 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자가 발전기를 사 용하여 전기를 사용했는데, 1개 작업장에 전기가 많이 사용되는 경 우에는 양해를 구하고 다른 작업장에도 전기를 보내는 관리도 했다.


사례 2
수항만은 꼭 살려내야만 했다
고달프고 힘들었던 일은 집에도 못 가고, 3일 동안 광산 굴에서 라면 끓여 먹어 가며 지낸 적이 있다. 장마가 심했던 그 시기에 항 에 물이 많이 며 지고, 도목항에서 펌프가 망가지고 물을 미처 퍼내 지 못하면 물이 올라오니까 그래가지고 2수항 쪽에 문으로 막고 그 랬다.더 이상 수항만은 꼭 살려내야 했다.
물이 못 내려오게 틀어막기도 하고 도목항에서 수항쪽으로의 통 로로 물하고 같이 나온 적도 있었는데 그래서 거기서 우리가 밖에서 들어가면 소요시간이 많이 되니까 그거를 돌발대기라고 해서 전 직 원이3일씩 항에서 꼬박 밤을 새웠다.
전기 수리실은 위험수당이 좀 있어서 채광과를 제외하고 다른 부 서에 비해서 임금은 높았다.
항에서 돌발대기로 대기하고 있을 때,라면을3봉지 밖에 끓일 수 없는 냄비에다가 7~8명이 먹으려고 하니,라면 3봉지를 끓이고 다른 냄비에 부어두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이행하는데 라면은 막내가 끓 였고,어느 정도 먹고 나면,마지막에 끓인 라면 3봉지는 막내 혼자 먹게 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물은 굴에서 나오는 물을 사용했고, 라면은 휴게실에 지속적으로 공급되었다.
공무과는 공무계(공작실,선광수리실)와 전기계 밖에 없었는데 공 무계장 공작실장 설계실장 주임 / 전기계장 전기실장 주임이 있었 다.
공무계의 사람이 제일 많고,전기계의 사람이 다음으로,공작실이 제일 적었다.
명절 등의 공휴일에 전기수리실은 쉬지 못했다. 전기점검 및 미 비 된 부분을 완료 시키는 등의 잔업을 하였다.
전기계 직원들의 모임은 많았으며, 경주라든지 자연농원이라든지 여행 및 야유회를 많이 가기도 했다.
간혹 비번으로 쉬는 조가 미꾸라지,옹고지,붕어 등을 잡아 직원 집 에서 추어탕을 끓여놓고 저녁퇴근시간이 되면 과장을 포함한 직원들 이 모여서 직원들 간 우애를 다지고 화목하고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 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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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9-13> 최정근 표창패 1985.3.10


사례 3
최고 경영자의 한 마디에 감명을 받았다
양양광산이 폐광이 되기 몇 해 전 다른 일(사업)을 구상하고 퇴직 을 신청 의료보험증을 반납 차 사무실에 들렀더니 당시 최재섭 소장 님께서 저를 알아보시고 하시는 말씀이 사회에 나가셨다가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면 주저하지 마시고 다시 저를 찾아오시라고 말씀하 신 것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을 하는데 “아 … 역시 이래서 최고 경영자를 하시는 구나” 하고 소장님의 인품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 게 되었으며, 현장에서 일을 하는 전공이었던 나를 소장께서 직접 알아 본 것은 아마도 수항에서 트로리카가 한 2~3일 동안 고장이 나 서 광석 운반에 차질이 있어 어려움을 겪을 때 내가 운 좋았는지 그 트로리카를 고친 것을 전기주임이 상부(소장)에 보고를 하였는데 그 일을 계기로 나를 알아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구술자 장승리 미나미골 석봉섭76세)
사례 1
울산광업소 출신 압기실 운전공 울산 광업소에3년 있다가 양양으로 왔다.
울산 광산은 굴진이 아니고 노천굴 그냥 파 재껴가지고 광석을 캤 다.
울산광업소를 폐광할 때 집으로 갈 것인지 양양광산으로 갈 것인 지의 여부를 물어서 배경이 있는 사람만 보내주었는데, 맨 먼저 7 명,다음에20명이왔으며,특수 분야는 대부분 오 고 일이 가능한 사 람들도 왔다.


사례 2
도목항을 위하여 댐을 막고 물길을 돌리다
양양항 에도 압기실이 있었고 탑동 에도 압기실이 있었다.
그러나 탑동 일대가 붕괴가 되어 광산이 문을 닫을 처지에 놓이자 압기실을 철거를 해야 되었으며, 탑동 앞이 무너지게 되자 탑동 꼭대 기에서 흐르는 물이 항로로 들어가니까 물을 막아 댐 공사를 했다.
그 댐 공사를 할 적에 물이 항로로 못 들어가게 댐을 막고 물을 산 쪽으로 굴절을 해가지고 산을 뚫어서 수로를 변경을 했다.
기존 물줄기로 흘러가면 전부 도목항 굴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도목항으로 들어가기 전에 물을 산으로 돌리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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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9-14> 당시 압축기 모습 1957년경


사례 3
소장 순시 중에 잠자다 걸려서 압기실에서 쫓겨났다
압기실 에서 일하는데 소장이 순시를 돌았다. 압기실 에서는 처음 부터 기계를 안 돌려요. 항내 채광과 노무자들이 작업복 갈아입고 준비해가지고 막장 가서 단도리(작업 준비)를 다 해가지고 하려면 한 한 시간 후에 되어야만 작업을 시작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전에는 기계를 안 돌리고 청소를 하고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근데 그날은 준 비를 안 하고 잤단 말이야. 그런대 하필이면 그때 소장이 오더니 “당신 왜 기계를 안 돌리느냐 ?”고 해서“아직 기계를 돌릴 시간이 안 되어서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라고 했더니 “기계를 안 돌리면 기계를 닦던가 해야지 왜 자느냐”호통을 쳤다.
소장한테 자는 걸 걸리고 나서 밧테리카 조수로 가서 한 1년 정도 일했고, 트로리카로 가라고 해서 거기서 일을 했는데 전기는 220짜 리였고, 광차 하나에 한 2Ton정도 되었는데,그걸한11개까지달 고 다녔어요.


사례 4
만천판에서의 사고 만천판 이라는 데가 뭐냐 하면 광석이 천장에 막 붙여 있어 막 때 려 먹는 덴데,거기를 굴진해가지고,높이 2m50 이정도로 해서 굴을 뚫고 들어가지만, 거긴 자체가 광석이기 때문에 무조건 발파를 하고 그랬는데 그 때 조수로 갔는데,멀 알아야지,착암 피트가1m50은 되는 것 같아.그기계 무게에다가1m50 되는 걸 혼자서 못하잖아. 내가 조수니까 앞에서 잡아서 받쳐주면 오야 착암공이 일을 하는데 오야가 기계 가지고 막 쳐 대잖아 그러니까 자리 날 때까지 미련하 게 악을 쓰고 붙들고 있어야 되는데. 그러다 보면 그 근처가 금이 간지도 모르고 있다가 보면 왕창 내려 앉아 버려요.
항내에는 압력이 약하고 쇳돌이 무거워서 그냥 주먹만 한 것도, 10m에서 떨어지면 맞으면 경상도 없이 중상이 아니면 사망이잖아. 그래도 그렇게 하다가 그 밑에서는 발파를 다 한 뒤에 쇠를 뜯어 놓 으면 그 밑에 구멍을 뚫어서 쇠를 빼 먹는 거에요.
근데 그날따라 밑에서 소리가 낫는데 큰 진동소리가 나서 오야가 기계 탁 끄더니“저 밑에서 사고 났다”고 그러더라고, 가서 보니 그 쪽 현장에서 사람이 쇳돌 바위가 공중에서 떨어져서 찡겼는데, 그게 바로 맞으면 바로 압사가 되는데,기계가 비스듬한 사이에 찡겼어. 그래가지고 감독한테 가서 얘기 하니까, 감독도 정신이 없이 줄사다 리로 사람을 들어 올리는데 흔들거려서 조심스럽게 구조를 했는데 ,다친 람은 다리 부러지고 허리 다쳐서 불구가 됐어.그래서 보상금 받고 나갔다.


사례 5
다친 사람 때문에 피 뽑으러 맨 날 불려 다녀
수항에 400m 짜리 승강기가 있어. 거기서 사람을 태우고 짐 싣고 하는 조차공이라고 하는 그걸 봤는데,근무 시간에는 나가질 못해, 위에서 감독이 왜 나왔냐고 막 물어보고 그래서,사람이 다치거나, 사무실에 가는 것 빼고는 아무도 못 올라간다..현장에서 작업을 하 는데 떨어지는 것은 버려두고 기계로 착암을 하면서 대꼬(쇠 고쟁 이)를 가지고 위에서 광석이 떨어뜨리려고 대꼬로 쳤는데,하필 사 람이 있는 데로 가서 쳐가지고,그 사람은 바로 죽지 않았는데,나와 서 죽었어.
전차가 나오면서 사람을 싣고 나와서 광산병원에서 급하면 거기 서 수혈을 하고 그랬는데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 피를 뽑는데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 피 뽑으면 안 되고 바깥에서 빈둥빈둥 하면서 일 하는 사람들의 피를 뽑았는데 나는 맨 날 불러 다니며 피를 뽑았었 지요.
사람들이 다치고 그러면 보상을 해주는데, 똑똑하고 빽 있는 사람 은 보상 많이 받고, 좀 어리하고 빽 없는 사람들은 보상을 받아도 개 값이에요. 산재대로 준다고 하여도 제대로 해 준적 별로 없었지 요.


사례 6
우산을 들고 굴 앞으로 마중 나온 아들 녀석
햇빛이 났는데,굴속에서8시간 작업을 하고 나면 나중에 비가 왔 는지, 눈이 왔는지 모르잖아 쌔가 빠지게 일만 하다 보면 항내에서 는 밖에 소나기가 오는지 안 오는지 모르잖아 그래서 일을 마치고 항을 나왔는데 초등학교 댕기는 쪼그마한 아들이 아버지 퇴근한다 고 삐딱하니 찢어진 우산을 갖고 아버지 마중을 나오 고 그럴 때에는 되게 반가웠지요.
항내에서 종업원들이랑 동료들이랑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일하다 가 자기 새끼 보면 반갑잖아 그래도 비 맞지 말라고 우산을 들고 왔 으니까.


사례 7
뇌관 빼돌려 황어 잡다 들통 나서 해고,견책,훈방
그전에는 채광과에서 굴에서 터지지 않은 뇌관을 감독들이 다 걷 어서 와야 하는데,그걸 미처 안 걷었던 거야.그래서 내 친동생이 그걸로 고기를 잡아먹다 걸렸어요.근데 보안과 에서“누가 어디서 언제 가져 왔느냐,어떻게 되었느냐”를 다 캐묻는 것이어요. 그래서 항내에서 그냥 가지고 나와서 황어를 잡아먹었다고 그랬는데.
고기 잡아 먹은 지 한 달이 지났어, 근데 동생이랑 같이 고기 먹 었던 자가 은연중에 얘기 했는데, 회사 경비원한테 들어가 버려서 말썽이 되었는데, 결국은 6명인가 나까지 포함해서 동생은 해고, 화 약 취급자는 견책,감독도 견책,항장도 견책 받았고, 나는 훈방을 받았어요.


사례 8
정착금 달라고 굴속에서 농성
양양광업소가 문을 닫으려고 할 때 문을 닫지 말라고 종업원들이 데모를 하였는데 그때 나는 뭘 했냐 하면 항내 사람들이 우 ~ 하면 서 데모를 하면서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조건을 제시했는데,광산 이 문을 닫으면 이주를 해야 하니까 정착금을 달라고 하면서, 정착 금을 얼마를 달라고 하느냐고 하자 액수는 말하지 않고 그냥 정착금 달라고 굴속에서 나가지도 않고 데모를 했는데 굴속에서 쌀이랑 라 면이랑 갖다 놓고,먹어가며.한 9일정도 있었는데 술도 갖다 주고 고기 갖다 대고 백 원 짜 리 화투를 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그 안 에서 자는 사람,화투치는 사람,고기 먹어가면서 술 마시니 시간 잘 가잖아 그렇게 시간을 끌다가 일도 안하면서 한 사람당50만원의정 착금을 받았다.


사례 9
슬레이트 불판에 돼지고기 안주
광업소에서 광부들에게 돼지고기를 한 달에 두 근씩 주었다. 정식 뿐 만 아니라 항내작업자 항외에서도 먼지를 많이 마시는 사람, 선 광장에서 오야삥 등에게 도 주었고, 설 명절 때는 소고기를 한 근씩 주었다.
노무자들이 한 달에 한번으로는 고기가 부족하니까 그때 내가 육 고점을 하면서 고기를 팔아서 돈을 좀 모았지.
지붕 개량할 때 슬레이트 지붕을 했는데 그 슬레이트 쪼가리 천지 잖아.지금은 슬레이트에 석면이 인체에 엄청 해롭다고 쓰레기 매립 장에서도 안 받아 준다는데. 근데 돼지고기 구워 먹을 라니까 불판 이 제대로 있나, 그래서 슬레이트를 펴 놓고 밑에다 장작불 켜 놓으 면 참 좋네. 그래 슬레이트를 삐딱하게 해 놓으면 골이 경사가 졌으 니까 기름은 밑으로 내려가고 고기는 노랗게 구워지고, 그때 소주를 댓병을 갖다놓고, 일회용 컵 그걸로 두잔 만 마시면 이 홉 들이 한 병이야.그래서 보통 석 잔은 마셔,잘 먹는 사람은 두병도 먹고 취 하고 그렇게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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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9-15> 구술중인 석봉섭 2011. 7
사택이 150세대가 넘었을 거예요. 한 줄에 8집이 있었고, 저쪽 너 머에도 있었으니 아마도 250세대는 넘은 것 같았다.
그때는 내가 처음 왔을 때도 일반미도 타 먹기 힘들었고, 납작 보 리쌀,알란미 일반미 해서3개를 한 달에 한번 배급을 타서 먹었다.
그러나 내가 더 먹고 싶다고 하면 임금을 줄여주고 그리고 배급을 더 주었다.
최근에 양양 광업소가 재개발 하면서 서쪽으로 굴진을 해요, 왜냐 하면은 해발 240m밑에 있는 광석을 캐먹을라고 하니 여기서240m 위에서 바로 하면 경사가 바로 지고 우회전 하게 되면 그 작업을 하는 지점이 바로 미나미골 동네 집 밑으로 지나가게 되어있어 쿵 쿵 거리 면 그래서 밤에 잠을 못 잔다고 동네사람들 전체가 대모를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