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문화25호

오색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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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771회 작성일 2014-04-29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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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령

해설 이규환

 

오색령 지명 복원의 당위성

 

1. 개요

 

지금의 한계령은 양양군 오색령이다. 오색령이라는 지명의 효시는 조선 선조실록에 의하면 1596년에 처음 명칭이 등장하여 이때부터 계속 오색령으로 불리어 왔다.

이곳은 행정구역상으로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 산1-30번지이다. 따라서 우리 땅에 걸 맞는 이름을 갖는 것 은 우리의 고유 권한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행정 난맥상(亂脈相)으로 빼앗긴 오색령 명칭을 아직도 되찾 지 못하고 지도상에 버젓이 한계령으로 기록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절대 용인할 수 없다.

 

 

 

2. 역사적 자료들

 

1) 오색령 명칭이 기록된 고문헌(古文獻)

● 추강 남효원의 유금강산기

● 팔곡 구사맹의 팔곡집

● 조선왕조실록

● 양서 이광윤 선생년보

● 김수증의 한계산기

● 만기요람

● 양와 이세구 양와집

● 저촌 십육 풍악록

● 이긍익 연려실기술

● 명암 이해조 현산삼십경

● 이중환 택리지

● 다산 정약용 다산시문집

● 해좌 정범조 해좌선생문집

● 성해응 기관동산수

● 식산 이만부 금강산총기

● 여암 신경준 산경표

● 관동창의록

● 증보문헌비고 권28

 

2) 오색령 명칭이 표기된 고지지 및 고지도

<고지지(古地誌)>

● 여지도서

● 대동지지

● 관동읍지

● 양주읍지

● 현산지

● 강원도지

● 해동지도

● 광여도

● 여지도

● 관동지도

● 청구도

● 대동여지도

● 양양읍지도

● 동역도

● 팔도지도

● 좌해분도

● 동여도

● 조선여지도

● 동방여전도

● 1872년 지방지도 외 29개 지도에 오색령이 표기됨.

 

3) 일제강점기 통상적(通常的)으로 오색령 명칭을 사용

<동아일보기사>

1932년 3월 15일 동아일보 기사에“인양선도로문제로 동민당국(洞民當局)에 진정 오색령으로 고쳐달라고 800명 동민연서로”란 제목으로 대서 보도되었다. 기사내용은 인제군 주민 800명이 연서하여 인제군 북면 원통리를 중심으로 오색령을 관통해 달라고 인제군과 강원도당국에 진정서를 제기하였다.

 

<매일신보기사>

1938년 12월 6일 4개면 연합으로 오색령 도로수선 탐승객에 편의불소(便宜不少)

 

<조선총독부 관보>

조선총독부관보에 1913년 1월 15일자로 강원도의 3등 도로를 다음과 같이 정하다. 울진∼죽변 간, 강릉∼견소진 간, 양양∼인제 간(藥水里五色嶺魚頭里經由)…라 하였다.

 

<개벽(開闢)>

● 개벽 제42호 1923년 12월 1일 기사제목 조선의 처녀지인 관동지역 란에… 중략“즉 영동의 울진, 삼척, 강릉은 대개 경상도와 갓고, 양양, 고성〔杆城合郡〕은 영서와 갓고 고대로(古代路) 오색령을 통하야 영서 의 교통이 빈빈(頻頻)한 소이(所以)…생략

● 개벽 제42호 1923년 12월 1일 기사제목 관동의 흑산국 양양군(關東의 黑山國襄陽郡)란에 시사문제는 오색령도로문제(五色嶺道路問題)와 송계문제(松契問題) 최중요하나 오색령문제는 대개 민간요구와…생 략

 

 

 

4) 일제강점기 지지(地誌)와 지도(地圖)는 한계령 명칭 사용

<조선지지자료>

1914년 이전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전국의 지명과 지지자료 내용 중에 양양군 서면 오색령 을 인제군 북면 지역에 표기하고, 한계령은 양양군 서면지역으로 변경 표기함으로써 오색령과 한계령이 뒤바 뀐 것을 발견하였다.

 

<지도발행>

1915년 조선총독부지도(1/50,000)와 1930년 한국근대지지자료의 인제군세 일반지도(1/200,000)에 오색 령 명칭이 삭제되고 한계령으로 표기되어있다.

 

 

 

5) 정부수립 이후 왜곡(歪曲)된 한계령명칭 계속사용

<국무원 전국지명조사>

● 1959년 3월 전국 일제지명조사 실시

당시 지명조사 보고서식을 보면 지도상기재, 경위도, 좌표, 유래를 보고토록 되었는데 양양군의 지도에는 오색령 지명이 지재되지 않아 보고할 수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1959년 3월 인제군에서 보고한 한계령 유래를 보면

“영동과 통하는 오색령의 낮은 영으로 한계지역에 있다하여 한계령이라고 하나 오색령 이라고도 함”이라 고 보고하였다. 따라서 의역을 하면 인제군에서는 한계령은 인제군 한계리 지역에 있는 낮은 령이고, 오색령 은 양양군 지역에 있는 높은 령으로 존재하였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 국무원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행정구역이외의 표준지명을 정하여 이를 사용한다 라고 국무원고시 제 16호(1961년 4월 22일)로 전국의 지명을 고시할 때 인제군 한계령도 함께 고시되었다.

 

<1950년대 이후 한계령이 표기된 지도>

● 1950년 미군사지도(일본육군참모본부 간행지도 인용)

● 1958년 민간회사 제작지도

● 1966년 국토지리정보원 지도

● 1967년 국방부측지부대 지도

 

 

 

3. 오색령 명칭복원을 위한 추진상황

● 2010년 양양군 주관 - 오색령 관련 학술심포지엄 개최

● 지명복원 제안 → 양양문화원 2011년 상반기 → 양양군지명위원회(접수보류) → 1차 심의-양양군지명위원회(미개최) → 2차 심의-강원도지명위원회(미개최) → 최종심의-국가지명위원회의 심의 고시 후 지도에 표기 또는 수정(미개최)

● 2011년 전국향토문화공모전 최우수상 수상 - 오색령 지명에 관한 고찰

● 2012년 강원향토문화연구논문 최우수상 수상 - 조선시대 양양부 소동라령의 고찰

● 2013년 강원향토문화연구논문 장려상 수상 - 일제강점기 창지개명 사례연구(양양중심으로)

 

 

 

4. 맺는 말

역사적으로 고증된 자료를 토대로 볼 때 현재의 한계령 위치와 명칭은 잘못된 기록이며 오색령이 맞다고 본다. 특히 인제군에서 1959년도 국무원에 지명조사보고 당시 한계령명칭과 유래를“영동과 통하는 오색령 의 낮은 령으로 한계지역에 있다하여 한계령이라고 하나 오색령 이라고도 함.”이라고 보고하였다.

이 말은 현재의 한계령(오색령)은 옛 한계령이 아니며, 옛 한계령은 인제군 한계지역에 따로 존재하고 있는 오색령 보다 낮은 영으로서 넓게는 오색령의 일부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일제가 만든 지도에 오색령을 한계령 이라고 적고 있음에도 인제지역에서는 해방 후인 1959년 당시에도 현재의 한계령은 오색령으로 불리고 있었 음을 알 수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은 일제강점기에 지도에 왜곡 표기된 한계령 명칭을 계속 답습함으로써 발생되는 지역갈등 을 더 이상 수수방관 하지 말고 결자해지 차원에서 현 한계령 위치에는 오색령으로 표기하고 기존의 한계령 명칭은 인제군이 국무원에 보고하였던 옛 한계령 위치에 각각 수정 표기해야 한다. 이것만이 왜곡으로 인한 소모적 논쟁을 종식시키는 길이라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