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문화26호

전설 - 누룩바위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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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790회 작성일 2015-05-09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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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군 손양면 여운포리 누룩 바위(사진)에 관하여 내려오는 전설을 보면, 강원도를 순행하던 송강 정철(1536-1593년)이 역참이 있던 상운리를 지나면서 마침 점심시간에 이르러 말 먹이를 부탁하였는데 먹이를 주는 사람들이 놋동이에 말죽을 내어 오는 것을 보고 이 마을이 얼마나 부자 마을이기에 놀라워하며 마을을 살펴보니 부잣집이 즐비하였다고 한다. 이 마을이 잘사는 것은 누룩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것과 같은 상운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여운포리의 누룩바위라고 생각하고 인부를 불러 맨 위의 바위를 굴러 떨어뜨렸다. 그 후 마을은 더 이상 부를 누릴 수 없었다 고 전하고 있다. 이 전설은 부촌의 사람들이 가난한 양반이나 벼슬아치들을 멸시할까봐 송강 정철이 심술을 부린 것 아닌가 본다. 또한 일부 주민들은 손양면 동호리 일원의 골프장(2007년 개장) 부지내에“할미재 봉”이라 불리는 가장 높은 봉우리가 있었는데(당시 일제가 혈을 질러 쇠녹 자욱이 벌겋게 있었던 것을 목격) 그 봉우리에서 남쪽을 보면 누룩바위가 바로 보이고 좌측(동쪽)으로는“장사 바위”라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어(현재도 일현 미술관 부근에 있음) 영험하다 하여 일제가 할미봉에 혈을 지르고 누룩바위는 깨뜨려 버려 현재의 누룩바위는 현저히 낮아졌다고 하며 지금도 누룩바위 상단의 바위는 일제가깨뜨리기 위해 징으로 쪼은 자국이 현재 남아 있다. 〔증언: 2014년, 손양면 상운리 이완형(당61세)〕송강의 다른 한 면을 보면 선조 22년(1589년) 의금부 지사로 역모 사건인 기축옥사를 처리하면서 정여립과 공모했다는 죄로 수많은 동인들을 때려죽인다. 남명 조식은 제자 최영경의 편지 한장을 받은 죄로 길삼봉을 지목하여 죽이고, 이발과 그의 어머니는 82세에 주리를 틀어 죽이고 11살, 5살 아들도 죽이는 등 3년 동안 죽은자 만도 1천여 명이 넘었다고 한다. 강원도 관찰사로 제수되었을 때 관동별곡, 훈민가를 지었고 이후에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을 지어 문학적 우수성을 앞세워 그의 잔혹함을 지워 냈다고 한다.(김진하 저 새벽 성원인쇄문화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