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정비화

22. 1 군단 민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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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572회 작성일 2016-03-2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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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1 군단 민사처


김희소 (남, 88세, 양양읍 남문3리)

면담일 : 2015.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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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사단 18 연대 군속으로 들어가 급양 업무를 보았다 .

북 고성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으며 , 함흥 남중 3 학년 때 해방을 맞이하여 철도 전문학교를 졸업 기관사가 되었다 . 함흥에는 기관차가 13 대 있었는데 야간 교대를 해야 하기 때문에 기관사는 23 명이 근무했다 .
1950 년 전쟁이 나도 기차는 12 월 말까지 운행되었다 . 12 월까지 기차를 운행을 마감하고 명파리에 있는 외갓집으로 갔다 . 며칠만 나갔다가 오면 된다고 하여 피신한 것이다 .

아버지와 누나는 사전에 월남하여 누나는 일본에 유학하고 있었다 . 어머니는 외가인 명파리에 남겨두고 며칠만 나왔다 가려했는데 어머니는 월남 가족이라고 북한내무서원이 데려갔다고 했다 .

남으로 걸어서 피란을 나왔다 . 해질 무렵 낮에도 호랑이가 나온다는 쑥 고개를 넘었다 . 낮에는 비행기 폭격으로 산속에 숨어있고 밤에는 길을 걸어 감곡리에 왔다 .

그런데 군인이 아니면 살기 힘들고 위험하여 군인이든 군속이든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친구의 소개로 1950 년 12 월 25 일 3 사단 18 연대 군속으로 입대하였다 . 당시 연대장은 김덕준 중령이었다 . 업무는 군 행정업 무를 보았으며 , 전쟁은 직접 하지 않았다 . 지금의 양구 땅굴부근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 살아 돌아오는 장병은 1 개 대대가 전투에 나가면 병력이 1/4 정도만 살아남아 돌아왔 다 .

급양업무를 보았는데 사망자도 많아 도장을 파서 월급을 타내서 부대비용으로 사용했다 . 그러니 도장 파는 기술도 늘었다 .


- 1 군단 민사처에 근무하면서 업무규정이 없어 주문진경찰서에 가서 베껴 섰다 .

양양에 와서는 1 군단 사령부가 속초 부월리에 주둔했는데 1 군단 민사처에서 민간인 업무를 하였다 . 처장은 장관급인데 전봉윤 대령이 맡았다 . 전봉윤 대령은 서예도 잘 써서 낙산사 주련 ( 기둥에 쓴 글씨 ) 을 썼는데 2005 년 화재 때 소실되었다 . 민사처 조직은 행정과 , 치안과 , 보안과 , 산림과가 있어 군민정관 ( 郡民政官 ) 이 지휘했다 . 치안과 아래는 치안대가 있어 김민하가 치안대장으로 있었고 각 면마다 치안대가 있고 오색에는 설악대가 파견돼 있었다 .

경무계에 근무했는데 업무규정이 없어 주문진 경찰서에 가서 베껴다 그 규정에 따라 근무했다 . 보안계장은 최성호 , 수사계장은 최영덕 , 경무계장 김완규 , 사찰주임은 이건석 , 경비대장은 김여수가 근무했다 . 보안계에서는 북피자와 불온한자를 호구 조사하여 정보로 이용하고 보관하였으나 민정이양후 모두 폐기하였다 . 민정이양후 경찰로 전환되어 경찰 경무계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하고 철물점 ( 민천상회 ) 을 개업 70 세까지 경영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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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4287)을 맞이한 치안대원 기념사진 1954년 5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