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시기 양양군민이 겪은 이야기 Ⅱ

구교리 김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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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257회 작성일 2018-03-12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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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옥자 (여, 80세, 양양읍 구교리)
■ 면담일 : 2015. 0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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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포사격 때 포탄이 우리 부엌에 떨어졌지만 불발탄이 되어 살았다.


강현면 물치리에 살았었는데 1950년 강현초급중학교 2학년이었다. 9월인가 비행기 소리만 들려도 종을 처서 우리는 방공호로 숨었다. 비행기는 기름뿌리고 폭격하였고 바다에서 함포사격을 하여 그중 한발이 우리 부엌에 떨어졌지만 불발탄이라 터지지 않아서 우리가 살았다. 그리고 길가는 사람들에게 기총사격을 하니 길에 나서지 못했다.

바다에 시커먼 군함이 나타나면 더 무서웠다. 대포알이 어디에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집마다 방공호가 있었다. 10월 아침밥을 차려놓고 먹으려고 하는데 함포사격이 시작 되었다. 가족들은 밥을 먹다가 말고 뿔뿔이 헤쳐졌다.



◆ 동생과 외삼촌을 따라 간성 다리까지 피란을 갔다 왔다.


아버지는 큰아들을 데리고 어디로 숨고 어머니는 동생을 데리고 나는 동생과 외삼촌을 따라 간성 다리까지 피란을 갔다가 돌아왔다. 길에는 피란을 가는 사람들로 길을 메웠다. 당시 물치는 38이북의 인공치하 때라 국군은 무슨 흠을 잡아 혼을 내기 때문에 벌벌 떨었다. 그래서 간성까지 피란을 간 것이다.
오는 길에 길옆에 금방 죽은 사람 시체가 있어도 그냥 모른척하고 왔다.

오면서 빈집에 들어가 잠자고 누가 부르면 도망갔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17세였던 외삼촌은 우리를 데리고 다니기가 참 힘들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