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시기 양양군민이 겪은 이야기 Ⅱ

조산리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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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550회 작성일 18-03-12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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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숙 (여, 79세, 양양읍 조산리)
■ 면담일 : 2015. 4. 22



◆ 이 대통령이 인민공화국을 괴롭힌다고 해서 정말 괴물인줄 알았다.


손양면 도화리에 살았었는데 6 ․ 25한국전쟁 때 송포 인민학교를 졸업하고 양양여자중학교 1학년이었다. 8월엔가 양양에 폭격을 하면 사이렌이 울려서 학교 뒤편 방공호로 뛰어간다. 서로 먼저 갈려고 문이 터지고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런데 로어(러시아어) 가르치는 언청이 남자 선생님은 희미한 5촉짜리 전기 불을 켜 놓고 로시아어를 가르치나, 불안한 마음에 로시아어가 머리에 들어오겠는가! 학교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을 괴물로 그려놓고 인민공화국을 괴롭히는 나뿐 놈이라 해서 정말 괴물인 줄 알았다.



◆ 할머니가 멀리 피란을 갈 사람들이니 쌀밥을 먹여야 한다고 했다.


오빠는 고급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차로 실어가 인민군에 입대시켰다.
전쟁 중에 포로가 되었다면서 돌아왔는데 삼베옷을 입고 왔다. 그때 집으로 오던 길에 어떤 할머니가 인민군 옷을 벗기고 그 집 아저씨의 삼베옷을 입고 가라고 했단다. 그러나 오빠는 전쟁 중 엉덩이에 파편이 박혀서 한동안 고생하였다.
1 ․ 4후퇴 시 도화리 우리 집은 방 2칸에 사랑 체, 행랑 체, 부엌 등 8칸집이었다. 눈은 쏟아지는데 피란민은 계속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다보니 우리도 잠자리가 좁아져서 문지방에서 쪼그리고 앉아 세웠다.
어머니는 피란을 나갔지만 어린 나와 할머니는 피란을 안가고 집에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우리 집에서 묵었던 피란민들에게 멀리 피란을 갈사람들이니 많이 먹여야 한다고 디딜방아를 찧지 못해 맷돌로 벼를 테겨(껍질을 벗겨) 키질을 하여 쌀을 고른 다음 그 쌀로 밥을 해 먹였다. 해가 지면 침침한 등잔불 밑에 모여 앉으면 요란하게 들려오는 함포소리에 질려 불안한 마음은 가슴을 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