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시기 양양군민이 겪은 이야기 Ⅱ

남문2리 신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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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472회 작성일 2018-03-1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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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덕순 (남, 97세, 양양읍 남문 2리)
■ 면담일 : 2015.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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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악산 전투에서는 국군 짐꾼, 금강산에서는 인민군 짐꾼을 했다.


나는 맨 처음 목수 일을 조금 하다가 우차 꾼을 해서 벌어먹고 살았다.
6 ․ 25전쟁이 나자 삼척 근덕면 덕산리 까지 피란을 나갔다가 경찰지서에 잡혀 들어가게 되었는데 나를 보고 짐을 지는 짐꾼을 하라고 하는데, 그때 그 사람들은 꼭 북쪽에서 나온 피란민만 짐꾼으로 뽑아 가는 것 같아 아주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피란을 같이 나온 가족이 있었지만 어찌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국군들과 함께 양양 서면 오색으로 들어와서 인민군과 대치중인 설악산 전투에서 포탄
을 지고 설악산 골짜기로 들어갔으며, 어떤 사람은 쌀을 2~3말 정도씩 지고 산을 오르내렸다. 그렇게 해서 탄약과 포탄을 지고 나르기를 2일 만에 인민군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그러자 국군들은 짐꾼들을 챙길 시간도 없이 다급한 상황이 전개되자 짐꾼들을 포기한 체 후퇴를 해버렸고, 국군 짐을 지고 갔던 짐꾼들이 자연히 인민군에게 잡혀 또 짐을 지고 인민군을 따라 금강산까지 가자고 하여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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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중인 신덕순씨 〉



◆ 밤에는 걷고, 낮에는 김일성과 스탈린 대원수 교양교육을 받았다.


낮에는 미군 비행기 폭격을 피해 나무 밑에서 김일성, 소련 스탈린 대원수에 대한 이야기 장단을 하는데, 그것을 가지고 교양 받는다고 했다. 밥은 주먹밥을 먹었고 밤이 되면 산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장전까지 갔는데 미군 비행기가 폭격을 한다. 천지가 다 날아가는 것 같았다. 바위틈에 숨어 있다가 나오니 인민군이 다 없어졌다. 그래서 짐꾼으로 간 3명이서 남쪽을 향해 산길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천신만고 끝에 옷은 다 헤지고 신발도 떨어지고 거지꼴을 하고 짐꾼으로 붙잡혀 간지 1달 15일 만에 삼척에 오니 아내가 아이들과 남의 집 일을 해주면서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때가 3월쯤 된다.